중국이 기침을 하니 세계가 독감에 걸릴 조짐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인건비와 전기료 상승, 여기에 반도체 등 주요 부품 공급난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의 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10월 중국의 생산자 물가 상승률은 13.5%로 1995년 이후 거의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지요.
국내 소비 시장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었습니다. 중국산 전자 제품은 물론 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마늘, 고추 같은 농산물 가격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식품 업계는 앞다퉈 라면, 빵, 과자, 달걀, 참치 등 서민 생활에 없어선 안 되는 필수품의 가격을 인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10월 생산자 물가는 1년 전보다 8.9%나 뛰었는데, 이는 13년 만의 최대폭입니다. 지구촌의 모든 나라가 심각한 중국 의존도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입니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31년 만에 가장 높았던 미국도 중국발 인플레이션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고물가에다 공급망 문제 탓에 원하는 상품을 바로바로 얻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서민들 사이에 획기적인 인플레이션 대책이 뜨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Buy Nothing Project(BNP)’. 아무것도 사지 않는 프로젝트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BNP 회원은 8월 시점에 427만 명에 도달했습니다. 내년엔 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BNP의 운영 모토는 ‘덜 사고 많이 공유하자’입니다. 모두를 더 부유하게 하고, 지구를 더 깨끗하게 만든다는 취지입니다. 이른바 ‘기프트 이코노미(gift economy)’입니다. 지역별로 그룹을 생성해 활동이 이뤄지는 BNP에서는 Gift Post, Ask Post, Gratitude Post 등 3개의 포스트를 통해 자신에게 쓸모 없는 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료나눔을 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요청하고, 그에 대해 서로에게 감사를 표시합니다. 우리나라 ‘당근마켓’의 미국판으로도 볼 수 있지만, 청탁도, 돈도, 물물교환도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네요. BNP와 같은 플랫폼은 계속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캠페인이 늘고 있는 배경에는 쓰레기를 줄이거나, 이웃과 교류하거나,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지출을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있습니다. BNP를 처음 시작한 리슬 클라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사람들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살림이 팍팍해지자 지출을 줄이려는 것이지요.
한 BNP 이용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휠체어를 단기 대여해주고 있습니다. 이 휠체어가 자신에게는 필요 없고, 공간만 많이 차지하게 되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작은 집으로 이사해 선반이나 식기, 가구, 크리스마스 장식품 같은 것들을 보관하기가 버거워지자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나에겐 쓰레기이지만, 누군가에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금융조사업체 뱅크레이트의 그렉 백브라이드 애널리스트는 “가구와 식료품 가격이 오름에 따라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대체품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의류 가격은 10월에 전년 동월 대비 4.3% 올랐고, 거실, 주방, 다이닝룸용 가구 가격은 13.1% 상승했습니다.
그렇다면, 기프트 이코노미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을까요?
매사추세츠주 웨이크필드에서 파이낸셜 플래너로 활동하는 필립 리 씨는 “온라인으로 무료 아이템을 구해 써도 인플레이션 헤지로서의 실용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합니다. 당장은 기프트 이코노미의 효력이 통계 수치에 반영되긴 어렵다는 것이지요. 원하는 걸 찾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필요한 타이밍과 다른 회원이 내놓는 타이밍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내년에도 인플레이션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만큼 이런 캠페인이 확산하면 가계 부담이 줄어들 여지는 있습니다. 전체 물가 통계에 반영되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것이죠.
직장을 잃거나 자영하던 사업을 접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BNP 같은 기프트 이코노미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고, 돈 절약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BNP 회원이 1년 새 200만 명 늘었다는 게 그 증거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