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편안함’ 패션 트렌드
건강 관심·‘바디 포지티브’도 영향
“민망하다”vs“자유다” 온라인상에서는 잊을 만하면 레깅스를 두고 갑론을박이 불거지고 있지만, 레깅스의 인기는 여전히 건재하다. 레깅스 관련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레깅스를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하기도 한다.
레깅스 패션의 성장은 팬데믹 이후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는 ‘편안함’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한다. 팬데믹 이후 재택 근무가 늘며 이전처럼 정장을 갖춰 입을 필요가 없어지며 잠옷·운동복 등 편안한 옷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건강에 대한 늘어난 관심도 레깅스 인기를 견인했다.
지난달 6일 ‘트렌드 코리아 2022’ 출간 소식을 알린 김난도 교수는 내년도 소비 트렌드 전망 중 하나로 ‘헬시 플레저’를 꼽았다. 김난도 교수는 “팬데믹 시대, 건강과 면역은 모두의 화두”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키워드로 꼽힌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Your daily sporty life) 트렌드에 이어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
늘어난 레깅스 수요에는 자신의 몸매를 긍정하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내 몸 긍정주의) 흐름도 녹아있다. 내가 가진 신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바디 포지티브는 사회가 정한 신체 사이즈나 몸매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탈피하자는 사회 운동이다.바디 포지티브는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특히 확산하고 있는데, ‘민망하다’는 세간의 손가락질에도 여성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옷장 속 레깅스를 선택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깅스 패션이 인기를 끌면서 레깅스가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실 여성의 옷차림이 경기지표로 활용된 것은 ‘치마 길이’가 먼저였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가 1926년 치마 길이와 경기변동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헴라인 지수’를 발표했던 것. 당시 테일러는 불황기에는 여성들이 구닥다리 스타킹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치마를 길게 입고, 호황기에는 실크 스타킹을 보여 주기 위해 오히려 치마를 짧게 입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미국 경제학자 매리 앤 마브리도 1971년 치마 길이가 짧으면 주가가 오르고 호황이라는 ‘치마 길이 이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실제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1920년대보다 치마 길이가 길어지면서 이같은 이론의 신뢰가 높아지기도 했다. 또 경기가 호황이던 1960년대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한 반면, 오일 쇼크 등으로 불경기였던 1970년대에는 긴 치마가 인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레깅스가 인기 패션으로 떠오르자 레깅스를 경기 지표를 가늠할 새로운 지표로 보고 있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 속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아이템에 주목한 것이다.
실제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소비자들은 비싼 외출복에 돈을 투자하기 보다는 스포츠에 적합한 본래의 기능 외에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일상생활에서도 연출할 수 있어 레깅스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지갑 사장이 그만큼 팍팍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숫자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레깅스 시장 규모는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크게 성장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레깅스 시장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시장 규모는 2016년 6386억 원에서 2018년 7142억 원, 지난해 7620억 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스포츠웨어 시장 파이 대부분이 나이키, 아디다스 등 해외 브랜드가 가져간 것과 달리, 한국 레깅스 시장은 안다르, 젝시믹스 등 국내 업체가 점령했다. 특히 젝시믹스의 성장세가 무섭다.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의 젝시믹스는 지난해 요가복 업계 최초로 첫 연 매출 1000억 원을 넘어섰다.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은 최근 3년 동안 매년 2배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영업이익이 각각 1398억 원, 84억 원을 기록해 2019년 대비 118% 성장했다.
다만 레깅스의 인기가 단순히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 불황이 아닌 대세 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향후 레깅스 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전문기관 베리파이어드 마켓 리서치는 2020년 320억 달러였던 세계 레깅스 시장 규모는 2028년 53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