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른바 ‘이중잣대’를 철회하라고 하지만 당장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유엔안보리결의 위반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북한이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는데 국제사회 어느 누가 이를 정상적으로 평가해 주겠는가. 행여 북한이 대화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오로지 자신들의 군사력 증강만을 위해 위장 평화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며 강한 국제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시도로서 종전선언 카드를 꺼낸 데 대해 북한이 이의 진정성을 테스트하는 것은 정말로 과거의 방식이다. 사실 북한의 대남라인과 군부가 긴밀히 조율하여 최근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앞으로 북한은 남측의 반응을 더 확인하기 위해 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하거나 아니면 여론을 의식하여 통신선을 복원한 후 재차 확인 작업을 거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달 10일 당 창건기념일(10·10절)에 또 어떤 무기체계를 등장시킬지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방식은 지양되어야 하지만 그 숨은 속내는 알 듯하다. 지금까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이러한 우회적인 과정을 거치고자 하는 것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대외협상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2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른 지도 3년이 넘었다. 이번의 종전선언 제안 자체도 북한이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그 추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테스트하려 하지 말고 즉각 대화의 장에 나와 대화 테이블에서 모든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이중잣대와 대북적대정책, 적대적인 언동을 철회하면 마치 우리 측이 관심 있는 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에 선심을 쓸 수 있다는 식으로 평가되면 남북관계의 신뢰회복은 어렵다. 북한은 더 이상 장외에서 사전에 검증하려 하지 말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장내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북한이 현재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있는 1차적인 조치는 통신선의 복원이 될 것이며 비정치·군사적인 분야에서의 대화 시도가 될 것이다. 우리 측은 코로나 국면임을 감안하여 화상 방식의 남북대화 시스템도 갖춰 놓았다.
이번 종전선언을 두고 국내외적으로 설왕설래가 많다. 종전선언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다목적 카드이다. 먼저 대화를 주저하는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올 여지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대화의 장에 나오고 종전선언을 통해 밝혀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후순위로 다루고 있는 미국이나 중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정착에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할 수 있는 유인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 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속 강조하고 있고 중국도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종전을 위한 만남이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무대가 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적인 목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노력이 성과를 거두어 적절한 계기에 종전선언이 추진되거나 이를 위한 대화가 재개될 수만 있어도 이러한 성과를 다음 정부로 연결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고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한반도의 평화시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북한이 오판하여 어떤 식으로든지 국내 문제에 개입하려 한다면 그 또한 천만부당하다. 국내 정치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제가 초당적이고 국민적인 지지를 통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시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