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들이 국회의원과 시의원의 자료 요구에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서울시의원이 방대한 자료를 요구했다가 반발이 일어나자 철회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29일 서울시와 서울시시의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A 시의원은 서울시 부서와 출자ㆍ출연 기관 17개를 상대로 △3년간 초과 근무현황 △대상 민간위탁기관의 2021년 현 직원 인적사항 △최근 3년간 개인별 휴가, 공가, 등 근무상황 △3년간 겸직신고 내역 △최근 3년간 외부활동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A 의원은 제출기한을 23일부터 다음 달 5일로 지정했다.
서울시 공무원 사이에서는 A 시의원을 향한 원성이 쏟아졌다. A 시의원이 5개의 자료를 12일 만에 달라고 했을 뿐 아니라 '연도별, 개인별, 일자별' 등 항목을 세부적으로 나눠 엑셀 양식에 맞게 제출하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3년간 직원 개인 자료를 취합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공무원들은 "언제 이걸 다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서울시 소속 B 공무원은 "저렇게 많은 자료를 요구하면 해야 할 업무가 마비된다"며 "전직원 초과근무현황이나 휴가 상황을 취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자료를 준비하더라도 그걸 보고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 데 몇 달은 걸릴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를 포함해 공무원 조직에서 자료 요구로 고통을 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10월 예정된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많은 국회의원이 각 부처에 자료를 요구한다. 서울시는 국정감사가 끝나면 11월 행정사무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서울시 공무원 사이에서는 '감사지옥에 빠졌다'라는 표현도 통용된다. 감사만 준비하다가 1년이 지난다는 뜻이다.
공무원 조직의 사업과 근무 현황을 살피는 일은 의회 고유 기능이다. 국회법 제128조와 지방자치법 제40조는 특정 서류를 정부와 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이 느슨하게 해석돼 적용된다는 점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본회의, 위원회, 소위원회 의결로 자료를 요구하게 돼 있는데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시의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시 소속 C 공무원은 "법은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주체를 개별 의원으로 정하지 않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국감은 국비를 받는 사무에 대해서만 감시하는 건데 시비 100% 사업이나 사무와 관련 없는 시장 사적인 부분도 물어본다"며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는데 대안을 내놓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공무원들의 과중한 업무 탓에 자료 제출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3일 시정질문에서 '자료 요청에 대한 답변이 늦는 경우가 많다'는 질문에 "부족할 수도 있지만 직원들은 제때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민원에 응대하고 격무부서에서 에너지 소진이 많아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기가 실무적으로 버거운 모양"이라며 "좀 더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서공노)은 자료 제출 요구가 매년 1만 건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한다. 유사한 내용이 많지만 세부 사항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원들끼리 조정 없이 자료를 요구하는 일도 흔하다. 공무원 사이에서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료 데이터베이스화(DB)를 요구하고 있는데 시의회는 그나마 협조적인 편"이라며 "국회도 이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