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부회장의 예측은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진 틀리지 않았다. ‘몰족’, ‘몰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스타필드를 비롯한 복합쇼핑몰에는 손님이 몰렸다. 복합쇼핑몰에서 쇼핑은 기본이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스포츠와 레저를 즐겼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복병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백화점, 마트, 야구장, 복합쇼핑몰 할 것 없이 소비자와의 대면이 중요한 오프라인 서비스업은 언택트 소비 트렌드에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이후 급팽창한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넘사벽’ 입지를 굳히기 위해 질주 중인 쿠팡의 관계자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가 당일배송(로켓배송), 새벽배송(로켓프레시), 쿠팡이츠(음식배달앱) 등 신선식품과 음식 등의 온라인거래 활성화를 앞당기면서 이제 집 안에서 냉장고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예측은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마윈 중국 알리바바 회장의 예측이다. 마윈 회장은 회원제 신선제품 매장인 ‘허마셴셩(盒馬鮮生)’을 인수해 ‘냉장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슬로건 아래 신유통 실험모델로 운영하고 있다. 허마셴셩 오프라인 매장에서 식재료를 확인한 소비자들이 전자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로 결제하면 반경 3㎞ 내에서 30분 내 배달을 완료해 준다. 1인 가구가 느는 데다 좁은 집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냉장고에 식재료를 보관할 필요 없이 허마셴셩 매장을 내 집 앞 냉장고처럼 활용하라는 취지다. 중국에선 허마셴셩에서 배달 되는 거리에 있으면 집값이 올라가는 ‘허세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젊은층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즉시배달’이 온라인 유통의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배달의민족(B마트)·요기요(요마트) 같은 배달 플랫폼, CU·GS25·세븐일레븐과 같은 편의점, 롯데온의 ‘바로배송’, 네이버의 ‘장보기’, 심지어 올리브영의 화장품 ‘즉시배송’까지 모두 짧으면 30분, 길어도 2시간 내 문 앞에 배달해 주는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즉시 배송 서비스가 보편화되면 냉장고는 그만큼 필요성이 줄어든다.
오프라인 유통업이 힘을 키울 때는 야구장이 유통의 경쟁상대가 되더니, 온라인 유통이 막강해지자 유통의 경쟁상대가 냉장고가 되는 식이다. 집에서 직접 옷을 지어 입던 시절 각 집에 한 대씩 있던 재봉틀이 대량생산 기성복의 출시에 설 자리를 잃었고, 음식을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통조림 공장들은 냉장고의 등장에 속속 자취를 감췄던 것과 같은 이치다. 코로나19 이후 어느 업종, 어떤 상품이 유통업의 경쟁상대가 될지 미래를 예측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 국회에는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있다.지난 10년간 유통법은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영업시간 단축에 이어 최근엔 복합쇼핑몰의 의무휴업 등 규제 강화 일변도였다. 하지만 6월 여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과 영업이 제한되는 심야 시간대에도 점포를 새벽배송 거점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19로 온라인쇼핑이 가속화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과 이커머스 기업 간 규제가 불공평하다는 형평성 논란이 커지자 여당 내부에서도 기류가 바뀐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비대면과 온라인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전통 기업들의 사업 영역을 쓰나미처럼 덮치면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생태계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 시국은 잇단 변이 바이러스의 기승으로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아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지금은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미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특히나 온라인 경제 우위 시대에 10년 동안 유지된 오프라인 유통매장 영업제한 같은 구시대적 규제는 과감히 걷어내야 할 시점이다.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