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은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나 5년 만에 쇼팽 곡을 선보이는 것에 이렇게 말했다.
조성진은 2015년 제17회 쇼팽콩쿠르 우승하고 다음 해 도이치 그라모폰(DG) 데뷔 앨범으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보였다. 이후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다. 드뷔시, 모차르트, 슈베르트, 리스트 등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만 녹음했다.
그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타이틀이 정말 많은 기회를 줬고 모두가 탐내는 자리"라면서도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되는 건 원치 않았다"고 했다.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당시 조금 경직됐지만, 지금은 쇼팽 앞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표현했다. "연주가 바뀐 건 잘 모르겠어요. 다르게 연주하려고 한 적은 없어요. 거울로 보면 저는 똑같아 보이지만 남들은 '늙었다'고 하잖아요. 연주 스타일도 그런 것 같아요. 하하."
이번 앨범은 올해 3~4월 녹음했다. 애초 2020년 녹음을 계획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국의 스튜디오가 문을 닫는 바람에 취소해야 했다.
그렇게 완성된 새 앨범엔 쇼팽 콘체르토 2번이 담겼다. 2016년 앨범에서 협연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이번엔 2번을 연주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조성진은 "콘체르토 2번 2악장은 쇼팽이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라며 "개인적으로도 1번 2악장보다 2번 2악장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테크닉과 음악적 요소가 많은 1번보다 섬세한 2번이 그의 취향이었다.
특히 그에게 콘체르토 2번은 의미 있는 곡 중 하나다. "추억이 많은 곡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연주했는데 2007년 신수정 선생님이 이 곡을 우연히 들으셨고, 2009년 정명훈 선생님 앞에서 연주도 하게 됐죠. 쇼팽 콩쿠르 세미 파이널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곡이기도 해요."
조성진은 4일부터 18일까지 전주, 대구, 서울, 인천, 여수, 수원, 부산에서 독주회를 한다. 리사이틀에선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아닌 스케르초 전곡, 야나체크와 라벨의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그도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변화를 실감했다. 처음엔 한두 달 정도 취소될 줄 알고 시간 활용과 취미생활까지 고민했지만 길어지는 팬데믹에 막막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곡을 익히려고 해도 손에 잘 안 붙었어요. 다음 연주가 언제인지 모르니까요. 시험 공부를 하는데 시험이 언제인지 모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어떤 곡을 완성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바흐 파르티타 전곡을 집에서 하루 동안 쳐보거나 베토벤 소나타 여러 개를 악보에 있는 대로 치는 등 평소 못해본 걸 해보려 했죠."
그는 이어 "무관중 콘서트는 라이브 콘서트를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관객 앞에서의 연주가 이제는 너무나도 소중해졌다.
"코로나19로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게 됐어요. 이전엔 온라인 공연이 정말 부담스러웠거든요. 저는 사람에게서 얻는 에너지가 있다고 믿어요. 관객과 함께할 때 시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이번 리사이틀 투어의 앙코르 격인 18일 예술의전당 무대는 네이버 TV를 통해서 중계된다. 조성진이 리사이틀 무대를 국내에서 실황으로 중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자신은 아직 배워가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발전은 없다는 생각이다. 마흔 살이 되든 쉰 살이 되든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했다. 다음 앨범에 대해선 헨델 등 많이 연주되지 않은 바로크 음악가들의 작품을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내일 고민은 내일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요. 오늘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려고요. 꿈도 많이 없어졌어요.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싶다. 베를린필, 비엔나필과 협연하고 싶다'는 생각들도요. 저는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좋은 연주를 하는 게 저한테 많은 행복을 주는 것 같아요. 제 가장 큰 목표는 제가 조금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