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쏴야 한다. 총을 가져오라고 시켰을 때, 나는 이미 이 일을 수행하도록 스스로를 구속했던 것이다. 단호하게 보여야 하고, 결심을 하면 확고하게 일을 수행해야 한다. 손에 총을 쥐고 2천여 군중을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물러선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군중은 나를 비웃을 것이다.’
소설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의 한 대목이다. 당장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던 그는 코끼리를 쏠 것이라고 서로 흥분하고 야단법석을 피웠던 군중에 이끌려 결국 코끼리를 쏴 죽이고 만다. 한발, 두발... ‘두 방을 맞고도 놈은 아주 쓰러지지 않았고, 머리를 축 떨군 채 비틀거리며 필사의 힘을 다해 서서히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는 대목도 있다.
각각의 논리를 요약해보면 우선 인상 측에서는 부동산 등 자산버블과 가계부채, 4%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경제성장률(GDP), 2%대를 넘는 소비자물가(CPI)와 기대인플레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동결을 예측하는 측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거리두기 강화로 인해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올 초 한 금통위원은 기자에게 “논리는 끼워 맞추기 나름”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의 언급처럼 최근 대내외 경제상황도 보기에 따라서는 인상과 동결 모두를 지지하기 충분하다.
기자는 연초부터 연내 인상 가능성을 언급해왔고, 10월 인상을 전망한 바 있다. 여전히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둔다.
◇ 8월 기준금리 인상 vs 동결, 논리는 끼워 맞추기 나름 = 누누이 언급한데로 우선 코로나19 전개상황과 백신접종 상황이 가장 큰 변수다. 최근 델타변이까지 겹치면서 50일째 네자릿수대 신규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또, 금통위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신규확진자수는 2155명을 기록해 2000명선을 다시 넘겼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7월 금통위에서 “코로나19 전개 추이와 그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코로나19의 재확산이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 면밀히 점검해 나가면서 판단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코로나19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영향에 무게를 둔 것이다.
코로나19 4차 확산과 거리두기 강화조치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출과 심리지수 등을 중심으로 타격이 크지 않은 모습이다. 다만, 심리지수의 경우 여름휴가철이라는 특수요인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또, 소비자심리지수(CCSI)와 경제심리지수(ESI), 기업심리지수(BSI) 등 각종 심리지수는 물론 경기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와 GDP 등 실물지표에 1~2개월 선행하는 뉴스심리지수(NSI)가 5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신규 확진자수가 2000명선을 넘나들고 델타변이가 주종을 이루는 상황이다.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수 있을까?
집단면역 달성 여부도 주요 변수다. 현재 1차 백신 접종률은 50%를 갓 넘긴 상황이다. 중간중간 백신보급 문제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9~10월은 돼야 어느 정도 집단면역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월 인상 소수의견을 냈던 고승범 위원이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하면서 통화정책 결정에 불참한다는 점도 영향을 줄 변수다.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고 전 위원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폭증하고 코로나 관련 불확실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도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이 무거우나, 금융안정에 보다 가중치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인상 소수의견을 개진했다.
비둘기파로 알려진 주상영 위원을 뺀 나머지 4명의 금통위원 중 과연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인상의견을 낼 수 있는 위원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들은 7월 금통위에서 한결같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었다. 그나마 “완화기조의 조정을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위원 정도만이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5월 금통위와 6월 한은 창립기념사 및 물가설명회, 7월 금통위를 거치며 이주열 총재는 연내 인상 가능성을 강화해왔었다. 다만, 한은 내부 반응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이 총재 발언 초기만 해도 한은 내부에서는 “3분기는 아니고 4분기를 염두에 둔 언급”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후 시장 반응이 7월 인상설 등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점을 감지한 후부터는 “커뮤니케이션이 참 어렵다”고 토로했었다. 현재는 “차라리 8월에 인상하는 것이 속 시원하겠다”는 분위기다.
23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발언을 기점으로 채권시장 금리는 8월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다만 따지고 보면 해프닝에 가깝다. 이투데이가 18명의 증권사 채권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상의견이 살짝 앞섰다. 반면, 금융투자협회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67%가 동결을 예상했다.
8월 금통위가 조지 오웰처럼 코끼리를 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때다. 만약 코끼리를 쏜다면 그 코끼리는 아마도 가계부채나 자산버블로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 아울러 11월 추가 인상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겠다. 조지 오웰이 코끼리에게 한방의 총만 쏜게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