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ESG 관련한 각종 법·제도·정책 구축은 ESG 시장 흐름을 앞당기는 핵심 수단이었다. 유럽연합도 이를 십분 활용하면서 ESG ‘룰 세터’(rule setter)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ESG 촉진을 위한 법과 제도 등을 일부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ESG 생태계 구축’ 측면에서의 소극적인 관점과 ‘룰 팔로워’(rule-follower)라는 오래된 인식 틀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필자는 ESG 생태계 구축에 다음 4가지 사항이 필수적이며 의무화할 때 시장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우선, 사업보고서에 ESG 정보공개를 의무화 해야 한다. 올해 1월 금융위원회는 환경(E)과 사회(S) 정보공개 의무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2025년에 자산 규모 2조 이상부터 적용하여 2030년에야 전체 코스피 상장기업에 의무화한다.
지배구조(G) 공시도 2026년에 전체 코스피 상장기업에 적용된다. 이 로드맵은 국제적인 ESG 시계와 비교하면 거북이걸음이다. 주류 보고서인 ‘사업보고서’가 아닌 ‘별도 보고서’를 통하여 공시하는 방식도 국제적 흐름과 부합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주로 활용하는 ‘사업보고서’를 통하여 통합보고 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번 국회에서 현재 1건이 발의되어 있다.
다음은 공적 금융기관의 ESG 고려 의무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민간 금융기관의 ESG 고려도 활성화될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선 ‘국가재정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가재정법은 68개 공적 연기금의 기금관리·운용과 기금자산운용의 원칙을 규정한 상위법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공적 연기금이 ESG를 자율 또는 의무로 고려하도록 규정한 국가재정법 개정안 3건이 발의되었지만 폐기된 바 있다. 현 21대 국회에서는 2건이 발의된 상태다. 다양한 목적의 공적 연기금을 포괄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ESG를 의무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되, 미고려 시 이유를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대신 기금운용평가에 ESG 실적지표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반영하여 ESG 고려를 촉진할 수 있다. 연기금이 아닌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공적금융도 해당 개별법에 ‘ESG 의무 고려, 미고려시 이유 설명’ 방식으로 개정 가능하다.
아울러 공적 금융기관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의무화도 필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수탁자 책임을 위한 원칙으로, ESG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코드 참여기관 167개 중 공적 금융기관은 현재 국민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우정사업본· IBK투자증권·IBK자산운용 6개에 불과하다. 물론 현행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율규범’이다.
하지만 공적 금융기관의 자산은 곧 국민의 자산이라는 점에서 코드 의무 도입의 정당성은 충분하다. 산업은행은 정책자금 위탁운용사 선정 시 코드 도입기관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는 코드를 도입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적 금융기관부터 코드 도입과 활동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끝으로 공공조달 과정에서 ESG를 의무적으로 고려하는 ‘지속가능 공공조달’을 시행해야 한다. 공공조달은 정부의 구매력을 활용하여 특정 정책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특히 공공조달에 참여하는 대다수 기업이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지속가능 공공조달’ 의무화는 ESG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소기업에 ESG를 확산하고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를 위한 ‘조달사업법 개정안’은 현재 1건이 발의된 상태다.
필자는 구속력을 가진 ESG 법과 제도의 부재가 얼마나 허약하고 허구적인지를 지난 수년 동안 목도해 왔다. ESG 관련 법과 제도의 의무화는 사실 세계적인 추세라는 걸 시장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선제적인 법과 제도를 도입해 ‘룰 팔로워’가 아닌 ESG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룰 세터’가 되어야 할 때다. 전환기에는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