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중신용자를 위한 중금리 개인신용대출 시장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출을 실행하려다 보니 고신용자가 아닌 이상 대출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중신용자를 위한 시장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걸 보고 이 시장을 선점하자고 생각했죠.”
최근 만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온투업체)는 중금리 시장에 뛰어든 이유를 이 같이 설명했다.
한국의 중신용자를 위한 개인신용대출시장은 ‘비어있는 운동장’이다. 고신용자, 중신용자, 저신용자로 차주를 신용도로 나눠 세분화한 대출금리를 제시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는 고금리와 저금리만 존재하는 ‘금리단층’이 존재한다. 중신용자라고 해서 금리의 중간값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신용자와 마찬가지로 20% 전후의 고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그동안 성장 잠재력이 큰 ‘비어있는 운동장’을 선점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도전이 이어졌지만, 무혈입성은 어려웠다.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사들이 이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초기에는 중금리 시장 진출의 과실을 따는 듯했으나 대출을 받는 차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상환능력이 낮은 다중채무자를 거르지 못한 점이 문제가 됐다. 당시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우려한 금융당국의 주도로 금융회사 간 다중채무자의 채무정보가 공유되면서 숨겨져 있던 한계차주들이 드러나면서 결국 중금리 시장에 진출한 금융사들은 자산건전성의 악화라는 쓰디쓴 결실을 보게 됐다.
다시 중금리 시장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엔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 온투업체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중금리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내년까지 중금리 대출 시장 규모를 35조 원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 시장에 뛰어든 금융사를 지원하고 있다.
당장은 한국에도 순조롭게 중금리 시장이 조성되는 모습이다. 다만 낮은 대출금리에 힘입은 풍부한 유동성으로 다시 가계부채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단 점은 20년 전 중금리 시장이 열릴 때와 비슷한 면이 있어 우려스럽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결국 중·저신용자부터 그 영향이 미치며 중금리 시장에 진출한 금융사가 부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상황은 비슷하지만, 당국과 금융사가 이미 차주별 상환능력을 파악하고 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과거엔 중금리 시장의 개화가 실패했지만 이를 교훈 삼아 그동안 없던 중금리 시장이 정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