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로 뒤늦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발생한 경우 진단받은 때부터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9일 A 씨가 B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초등학생이던 2001~2002년 운동부 코치 B 씨로부터 성폭행당했다. 15년이 지난 후 한 대회에서 우연히 B 씨를 마주친 뒤 충격을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B 씨는 2016년 말 기소돼 2017년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항소·상고가 기각돼 2018년 확정됐다.
A 씨는 확정판결이 나기 전인 2018년 6월 A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는 B 씨의 성범죄로 인해 A 씨가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언제인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무변론으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심은 “단기소멸시효(3년) 기산일은 형사재판 1심 선고일이고 B 씨의 불법행위로 인한 A 씨의 손해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최초 진단을 받은 날 현실화 됐다고 봐야 하므로 이때가 장기소멸시효(10년)의 기산일이 된다”며 위자료 1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A 씨가 2016년 6월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현됐다는 진단을 받은 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됐고 이때부터 소멸시효(10년)가 진행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어느 정도로 진행될지 등을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 소멸시효가 완성돼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