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고 있던 것들 아닐까요?" (류현경)
연극열전 레퍼토리 '렁스'(연출 박소영)가 재연으로 돌아왔다. 평생에 걸쳐 출산, 미래, 환경과 세계, 좋은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두 남녀가 나오는 극이다. 두 사람의 생각의 중심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념이 깔려있다.
초연부터 화제가 된 극 중 대사가 있다. 이케아에서 쇼핑을 하던 중 '아이를 갖자'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지구 환경 전공의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비행으로 치면 런던에서 뉴욕까지 몇 번을 왕복해야 그만큼 탄소량이 발생할지 계산해봤어. 2550번, 내가 7년간 매일같이 뉴욕을 왔다 갔다 해도 아이를 갖는 것보다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이 적어. 1만 톤이야. 이산화탄소가 1만 톤. 에펠탑의 무게야. 내가 에펠탑을 낳는 거라고!"
지난해 초연부터 함께 하는 배우 이동하, 올해 새롭게 합류한 류현경에게도 '좋은 사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이동하는 '렁스'를 통해 '좋은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내가 잘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많이 묻게 돼요.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일까'라고 생각하면 '아니다'라고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 아닐까요?"
무대는 가로 3m 남짓의 좁고 긴 형태다. 무대 장치는 두 사람이 지나온 발자국을 상징하는 신발뿐이다.
"신발의 색이 통일됐어요.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사랑했던 사건이 하나의 색깔로 묶이니 더 좋아요. 여자의 말 중 '우린 작은 얼룩일 뿐이고, 일부분이다'라는 대사와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고요." (이동하)
암전되는 순간도 거의 없다. 대본엔 지문도 거의 없다. 배우들이 해석하는 대로 극이 다르게 전달된다. 초연과 많이 바뀐 듯 느껴지는 것도 참여하는 배우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본은 초연과 똑같다.
'렁스' 외에도 2인극 참여 경험이 있는 이동하는 2인극의 매력에 대해 "둘만 의지하기 때문에 상대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로만 믿고 해서 극에만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책임감도 생기고요. 더 밀도 있게 공연을 해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요. 관객이 그걸 따라오는 희열도 있고요."
류현경에게 2인극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남녀 두 명의 이야기를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렁스'가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엔 힘들고 대사도 못 외울 거 같긴 했지만요. 하하."
류현경은 아이와 환경을 연결짓는 대사를 접하고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희 언니가 아기를 낳았을 때 같이 키우는데, 기저귀 양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쓰레기봉투 한 통을 매일 갖다 버렸어요.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환경을 말하는 극에 참여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배달음식을 먹기도 하죠. 편리를 누리려는 생각과 환경을 지키자는 생각이 늘 공존해요."
'렁스'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연극을 보고 나면 불편한 것들이 되레 많아진다. 두 사람 모두 각자만의 환경을 위해 지키는 실천법들이 있다. 하지만 '렁스'를 하며 무심코 지나친 모든 것들이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재활용할 때 페트병 비닐 꼭 떼서 분류해요. 그리고 반드시 씻어서 내놓고요.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요. 배달 용기 때문에 배달 음식도 줄였고, 운전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죠." (이동하)
"텀블러나 손수건을 들고 다니려고 노력해요. 제가 산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산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날 거 같아요. 산에 가면 쓰레기를 늘 줍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거든요. 산에서 살고 싶은 저는, 왜 쓰레기를 버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류현경)
두 사람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공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현경이를 보면 '저러다 죽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연기하는 순간은 늘 재밌어요. 지나고 나면 그 순간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요. 연극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렁스'의 행복한 것, 소중한 것들이 제 안에 남을 거 같아요." (류현경)
"'렁스'를 보고 삶을 돌아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 역시 그 어떤 작품보다 나 그리고 인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돼요. 저 좋은 사람이겠죠?" (이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