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 운운하며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여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갑자기 떠오른 상황이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당장 가짜뉴스를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순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언론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버린 민주당 의원들이 정작 억울한 상황에 직면하고, 의혹을 제기해야 할 경우엔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도둑을 쫓아야 하는 개를 묶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언론사들은 “찜찜한 기사는 쓰지도 않겠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앞으론 대한민국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의혹 보도는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역사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다양한 변수, 상황들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소위원회 회의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언론통제법을 강행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심지어 소관 정부부처인 문체부도 “전례가 없다”고 말하는데 말이다. 여당의 입장이 수시로 바뀐 점도 수상하다. 민주당은 애초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할 때만 해도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서 난무하는 가짜 뉴스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갑자기 올 초 ‘언론개혁’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며 인터넷 가짜뉴스만 대상이라고 했던 주장과 달리 언론과 포털도 모두 포함했다.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하면서는 은근슬쩍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1인 미디어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작 ‘가짜 뉴스 제조원’은 뺀 것이다.
민주당이 처음 징벌적 손해배상을 주장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민주당은 ‘1인 미디어를 통제해야 하는 이유’로 “언론사의 오보 등에 대한 피해 구제는 현행법으로도 법적 구제장치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경우 이를 구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잘 돼 있다. 민사법, 형사법, 언론중재법 등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13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내세우며 사실상 기자실 통폐합을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성명서를 통해 강력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던 주인공은 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 노웅래 민주당 의원 등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징벌 대상을 수시로 바꾼 민주당, 한때는 언론 통제를 반대했던 민주당은 그 어떤 설명도 없다. 두루뭉술, 은근슬쩍 넘어간다. 논리도 명분도 없다. 이쯤 되니 청와대와 여당이 작정하고 언론통제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핑계로 대통령 임기 말과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을 아예 차단해 버리려고 하는 건 아닌지.
실제 올 초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가장 목소리를 높인 인사는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직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회삿돈 555억 원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됐는데, 이에 대한 비판 보도가 이어질 때 “가짜뉴스와 싸울 수 있는 보호 장치”라며 언론중재법 처리를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민주당은 납득할 만한 논리와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바엔 비현실적인 악법을 거둬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