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란 용어가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시대이지만, 정작 무엇을 지능이라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런저런 이론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적어도 분명히 구분되는 여덟 가지 능력인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이 있다. ‘지능’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이 많을수록 적어도 한 부분에서는 나름 뛰어난 능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지니, 아이디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의 자존심을 챙겨 주는 지능이론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지능’이 이처럼 모호하고 난해한 개념이라 한다면 세련된 기능을 갖춘 기계제품 모두에 예외 없이 붙어 있는 ‘지능형’이란 수식어의 의미가 새삼 궁금해진다.
AI 기술이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이 분야가 미래 먹거리로 손꼽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곳에서까지 AI형 로봇들이 인간 못지 않은 혹은 인간보다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는 상황도 한몫한다. AI 기술이 인간에게 놀라움과 동시에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던 최근 예로 2016년 3월에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 사이의 바둑 시합을 꼽을 수 있다. 이 대국은 단순 바둑 시합을 넘어 ‘인간 대 기계의 대결’로 불리며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는 4대 1로 알파고의 압승이었다. 1997년 인공지능 딥 블루(Deep Blue)가 당시의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iKasparow)를 이겼었고, 때문에 이날이 소위 인간에 대해 기계가 첫 승리를 거둔 날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둑은 체스와는 달리 그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다 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제 아무리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인간을 넘어서기는 어려운 분야로 여겨졌었다. 때문에 이 시합 결과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킬 보루에 강한 타격을 가한 셈이다.
지능형 로봇이 인간만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선 또다른 예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기사 작성 방식인 로봇 저널리즘이 있다. 언어 습득이야말로 오랫동안 AI가 넘을 수 없는 절대적 장벽으로 여겨져 왔다. 인간언어 체계가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정보를 추측하는 방식의 비주얼(visual) AI는 지난 수년 동안 급격하게 발전한 데 비해 음성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AI의 발전은 상당히 더디다. 아무리 ‘똑똑한’ 기계라도 일반어-사람들이 일상에서 쓰고 말하는 언어를 의미한다-를 공부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인간만의 소유’라는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2014년 로봇기자 퀘이크봇(Quakebot)이 지진 발생 8분 만에 인터넷에 지진 속보를 게재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현재는 알고리즘에 의한 기사의 자동생성 시스템이 날씨나 금융 혹은 스포츠 등의 분야로 확대된 상태다. 또한 로이터통신의 AI기자 로이터 트레이서(Reuters Tracer)는 SNS부터 방대한 온라인 공간을 돌아다니며 이슈를 추적하고 우선순위를 정한 후 스스로 기사를 쓴다.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은 기계가 인간 수준의 지능이 있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일명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질문자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컴퓨터 및 사람과 문자로만 대화를 나누는데, 여러 문답 후 질문자가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판별하지 못하면 테스트를 통과한 게 된다. 흥미로운 건 아직까지는 이 테스트를 통과한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AI가 어느 한 분야에선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 준다 하더라도 아직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 지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란 의미다. 그 지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무관하게 조금은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