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에 혐오가 뒤섞인 간병인들의 야단법석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노인이 경단만 한 똥을 찰흙처럼 주무르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풍경도 아닌지라 손과 주변을 잘 소독하라고 당부하고 요양원을 나섰다. 요양원에 촉탁 의사로 왕진을 다니면서 종종 마주치는 풍경이다.
처음 요양원을 방문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교수, 고위 공직자, 운동선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어르신들이었는데, 지금은 정신과 육체의 상당 부분이 퇴화하여 간신히 연명만 하는 분들이 허다하다. 그분들을 보면서 초기엔 우울감이 밀려오곤 했다. ‘인생무상’이란 단어를 이곳만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은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리 머지않은 시일에 이런 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왕진 중 한 노인이 편안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음미하는 광경을 보았다. “무얼 그리 맛있게 드세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당신 자신의 배설물이 묻은 기저귀를 껌처럼 씹고 계신 것이었다.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노인이 속세의 초월과 자유, 행복을 누리시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 나는 온갖 번뇌(?)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자녀 교육, 세금, 병원 운영,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진 형 소식…. 돌이켜보면 의식이란 것을 획득한 후부터 내 인생은 끝없을 것만 같은 의무와 도전의 역사를 쉴 새 없이 해결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다. 숙제, 시험, 취업, 결혼, 육아, 경영 등등. 그런데 그 노인은 모든 의무와 노동, 심지어 주변의 시선에서마저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노(老)의 상태가 고(苦)란 것은 젊은이의 시선, 즉 피상적으로 본 타인의 왜곡된 선입관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득한 순간이었다. ‘생노병사’는 삶의 한 과정이고, 그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요즘 몸으로 느껴가고 있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