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25m 이상 올라가는 장대한 크레인 고리가 세로 40피트(ft), 가로 100피트짜리 화물 컨테이너를 들어 올린다. 컨테이너의 무게는 최대 40톤(t). 크레인의 조종실은 크레인 고리와 함께 지상 높이 올라간다. 그런데 바닥이 투명으로 돼 있는 조종실에 사람 발이 보이지 않는다. 크레인이 1km가량 떨어진 상황실에서 원격 조종되고 있어서다. 한 평도 안 되는 조종실에서 일해야 했던 크레인 기사는 원격 제어로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LG유플러스가 지난달 29일 부산항 신감만부두에서 5G 스마트 항만을 선보였다. 부산항에 있는 90여 개의 야드크레인 중 2대에 5G 기반 원격 제어를 시범 적용한 것이다. 원격 제어는 야드크레인에 부착된 카메라로 실시간 송출 영상을 보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크레인을 제어하는 솔루션을 뜻한다. 현재는 최대 1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제어되고 있고, 최대 10km 거리까지 원격 제어가 가능하다. 기술이 고도화하면 300k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도 야드크레인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항만의 하역 업무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대가 열린 셈이다.
원격 제어가 이뤄지는 사무실에는 화물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현장과 연결된 화면이 떠 있다. 크레인 기사는 오락실에서 볼 법한 조이스틱으로 화물을 옮기고 내려놓는다. 크레인에 장착된 8대의 카메라에서 5G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내기 때문에 지연 없이 크레인 기사는 화물을 제어할 수 있다. 시연장에서는 저지연 영상전송 솔루션을 적용한 영상과 그렇지 않은 영상을 비교 체험할 수 있었다. 솔루션을 적용하지 않은 영상에서는 솔루션이 적용된 영상보다 1~2초가량 지연이 확인됐다.
LG유플러스는 2019년 8월부터 부산항만공사와 손잡고 5G 스마트항만 실증 사업을 하고 있다. 크레인 구동 제어 시스템 제조업체인 서호전기, 5G 원격제어 기술을 보유한 쿠오핀 등이 함께해 올해 실증 3년 차를 맞았다.
24시간 돌아가는 항만에서 화물 크레인 조종 작업은 4교대로 이뤄진다. 시간으로 따지면 일일 6시간 근무지만, 어두운 새벽이나 비 오는 날에는 집중력을 더 필요로 해 기사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목디스크, 근육통 등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 기사들도 적지 않다.
5G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원격 제어는 이 같은 크레인 기사들의 근로 환경을 확 바꿨다. 일단 지상 25m 높이의 한 평도 안 되는 조종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사들의 삶의 질은 올라간다. 김승남 서호전기 사장은 “수동 크레인 기사의 경우 젊은이들의 수요가 많은 직종이 아닌데 원격제어가 일반화 화면 크레인 기사의 연령대도 많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효율도 대폭 개선됐다. 크레인 자동화와 항만운영시스템 연동으로 자동위치 인식, 자동조향, 자동랜딩 등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기술로 크레인 기사 한 명당 일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 수동 크레인은 대당 한 명이 필수적이지만, 원격 크레인의 경우 1명이 4대까지 조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체 비용 효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LG유플러스는 인력 대체 효과와 관련한 사항은 부산항의 문제이며, 아직 언급하기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서재용 LG유플러스 스마트인프라사업담당(상무)는 “같은 일을 더 편한 환경에서 할 수 있고, 이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비용 절감 효과 등은 좀 더 운영해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LG유플러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디지털 뉴딜의 하나로 추진하는 ‘2021년도 5G 융합서비스 발굴 및 공공선도 적용 사업(5G 융합서비스 사업)’에 선정돼 올해 추가로 여수 광양항과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 스마트항만을 구축한다. 현재 부산항 신감만부두에 적용된 5G는 3.5㎓(㎓) 대역 기지국을 이용했지만, 올해 신선대 부두에는 28㎓ 대역을 기지국을 구축해 테스트한다는 방침이다.
부산항 신감만부두도 시범 운영을 넘어 올해 안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재용 상무는 “저희야 빨리 모든 크레인을 원격 제어로 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항만 경영에 따라 순차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는 이날 시연한 원격 제어를 건설 현장 등으로 충분히 넓힐 수 있다고 보고, 신사업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서 상무는 “건설 현장에서도 원격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며 “스마트팩토리, 스마트모빌리티, 스마트시티ㆍ산단 등 5G B2B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