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게 없어. 볼 게.”
모처럼 쉬는 날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볼멘소리가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채널마다 온통 재탕이어서다.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TV는 물론이고 지상파도 재탕 일색이다. ‘본방 사수’가 무색해진다.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본방 사수 해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재탕 시작, 이후 채널만 돌리면 그야말로 ‘틀면’ 나온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건 뉴스뿐이다.
물론 재탕이 좋은 것도 있다. 코로나19 시대, 바깥 활동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제시간에 놓친 프로그램을 언제든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놓친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고집스럽게 지상파나 종편, 케이블TV의 채널 편성에만 의존하진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이다.
재탕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들도 할 말은 있다. 광고 수익과 방송 콘텐츠 사업 의존도가 큰데, 다매체 시대 신규 매체의 성장으로 시장의 파이가 줄어 신규 프로그램 제작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영난까지 호소한다.
그래서 그런가, 언제부터인지 꼼수처럼 등장한 게 2부 편성이다. 한 프로그램을 2편으로 쪼개서 연이어 편성하고 막간에 광고를 넣는 식이다. 시청자는 짜증이 난다. 각 회의 엔딩은 늘 흥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끊기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광고 사이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까 봐 초 단위로 카운트 다운까지 한다. “60, 59, 58...”
이젠 이런 꼼수 광고도 대놓고 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그동안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에만 허용하던 프로그램 중간 광고를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에 대해서도 전면 허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종편, 케이블TV와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다매체 시대 신규 매체 성장으로 인한 방송환경 변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및 공적 서비스 구현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송시장 개방에 따른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상파 방송의 광고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실, 종편과 케이블TV,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과 함께 지상파 방송사의 수익 감소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상파는 경쟁력 강화나 자정 노력은커녕 수신료 인상 등을 들먹였다. 그리고 결국엔 시청자의 시청권을 훼손하는 중간 광고 도입까지 따냈다.
종편과 케이블TV의 중간 광고는 납득할 수 있었다. ‘재미’가 있어서다. 시대 흐름을 적절히 따라가지만 흐름을 선도하기도 한다. 위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지상파를 사용한답시고 규제 당국의 눈치를 보는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들이 시시해졌다. 자연스레 시청률을 빼앗기고, 그 사이 흥행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인기 방송인과 연예인, PD들이 종편과 케이블TV로 대거 빠져나갔다. 그런데도 소위 공영·준공영 지상파 방송사인 KBS와 MBC는 각 정권의 입맛에 맞는 편파 방송 등으로 그나마 있던 시청자들의 눈살마저 찌푸리게 했다. 개국 50년이 넘는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이 수신료와 광고 수익에만 기대어 시대의 흐름을 얼마나 읽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껏 찾은 돌파구가 인기 편승이다. 일례가 얼마 전 시즌2가 종영된 국민 막장 드라마 SBS ‘펜트하우스’다. 시즌2로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시즌3로 또 돌아온다고 한다. 해외의 시즌제 드라마는 완전 사전 제작 후 방영하는데, 이 드라마는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편성됐다.
지상파 중간 광고 허용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6월부터 45~60분 분량의 프로그램은 1회, 60~90분 프로그램은 2회씩 중간 광고를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초과할 경우에는 프로그램 길이가 30분 늘어날 때마다 1회씩 추가해 프로그램당 최대 6회까지 중간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걱정되는 건 중간 광고에 기대어 지상파 방송사들의 콘텐츠가 창의력보다 우려먹기식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잠시 후 3부가 계속됩니다?”
정말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