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변요한에게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는 진심이었다.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만큼 신중함도 더했다. 옳게 가고 있는지 쉼 없이 고민하며 '자산어보' 창대 역에 자신의 진심과 진실함을 담았다. 변요한은 창대를 만난 이후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체감하는 중이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변요한을 만났다.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창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하려니 조금은 막막하더라고요. 제 연기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표현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죠. 지금 시기의 저 같기도 했고, 우리 주변 모두의 청춘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역에 맞는 사투리를 구사하거나 생물 손질을 배우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이 숙제이자 복병이었다. 연기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시나리오를 올바른 시선으로 읽은 건지 계속 점검하면서 천천히 답을 찾아갔어요. 그 시대 창대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는지, 어떤 마음으로 학문에 대한 갈증을 느낄지 고민했습니다. 너무 계산적으로 연기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흘러가는 대로 잘 묻어나고 싶었죠. 한편으론 저와 창대가 느끼는 갈증이 같아서 지금의 창대가 나온 것 같아요."
데뷔 10년 차를 맞은 변요한은 연기하는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배우로서 고민이 많은 탓에 자신을 스스로 몰아가고 괴롭힐 때도 많다는 고백까지 했다. 스스로 2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잖아요. (연기를) 고치긴 어렵더라고요. 앞으로도 고치려 노력할 테지만, '자산어보'가 마법처럼 저라는 사람의 삶을 바꿨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젠 제가 바라보는 것들을 느끼려고 해요. 그리고 많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그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영화는 흑산도 근방의 섬 중 200여 년 전 정약전이 머물렀던 유배지와 가장 비슷한 조건을 갖춘 도초도, 비금도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다. 변요한은 촬영 전 정약전이 유배했던 흑산도를 직접 찾아가는 등 영화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처음엔 신나는 마음으로 갔는데, 서울에서 흑산도까진 너무 멀었어요. 지금은 현대적인 시설도 잘 갖춰져 있지만, 조선 시대엔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정약전이 실제로 생활했던 곳을 가보니 너무 쓸쓸하더라고요. 외로운 섬에서 엄청난 업적은 남기신 게 새삼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창대에게도 더 가깝게 다가간 순간이었죠."
'자산어보'는 변요한의 첫 흑백 영화이기도 하다. 색채감 없는 화면은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낯설 수밖에 없다. 동시에 빛과 어둠을 활용한 연출은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색채감이 없고 오로지 배우의 눈, 목소리, 형태로만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더 옳게 담길지 고민했어요. 최대한 진실된 모습으로 연기하려 했죠. 특히 지금 시대 배우로선 정말 영광입니다."
변요한은 최근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후 벅찬 듯 눈물을 쏟았다. 감사함의 눈물이자, '자산어보'가 주는 뜨거움을 굳이 참지 않아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잘 버텼다고 셀프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자산어보'는 여운으로 남았다.
"'자산어보'를 촬영하면서 오랜만에 하늘을 봤어요. 큰 파도가 올 때 저를 덮칠 거 같은 두려움도 느꼈죠. 관객들에게도 제가 받은 그 울림이 전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