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인근에서 홍석천을 만났다. 그는 '스페셜 라이어'에서 동성애자인 '바비 프랭클린'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홍석천과 '스페셜 라이어'의 인연은 깊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던 당시 극단 한양 레파토리가 올린 무대에 섰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제목은 '심바새메(심야엔 바바라 새벽엔 메리)'였어요. 우리 교수님이 무대에 올리셨죠. 초연 때는 대학로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극장에서 시작했어요. 그땐 배우나 관객이나 웃다가 땀까지 흘렸다니까요. 너무 웃어서 몸이 뒤로 젖혀지고 난리가 났어요. 소극장에서 소통해야 맛이 나는 작품이에요. 왠지 앞으로 50년은 더 할 거 같아요."
작품은 영국 희극작가 레이 쿠니(Ray Coony)의 희곡 '당신의 부인을 위해 달려라'(Run for Your Wife)가 원작이다. 두 집 살림하던 남자가 어떠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중생활이 탄로 날 위험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작품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소재 자체가 기발하고 연출도 짜임새 있어서 한순간도 웃음이 그칠 때가 없다. 다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표현들 때문이다.
"충분히 공감해요. 연기하는 저로서도 불편한 소리가 계속 나오죠. 게이들에 대해 '정상적이지 않다'라는 표현도 있고요. 하지만 1980년대 연극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땐 남자 둘이 사귀는 게 불법이어서 경찰이 잡아갔다잖아요. 그나마 1970년대 있었던 운동으로 불법이 아니게 돼 경찰이 손을 못 쓰는 상황이 연극에 연출되죠. 그런 상황들을 알면 좀 나을 거예요."
성소수자가 아니어도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홍석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 '라이어'에서 했던 웃음 장치를 많이 생략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 연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더욱 자제하려 하고 있고요. 더 자극적으로 희화화하거나 애드리브를 넣을 부분이 되게 많아요. 학교 다닐 땐 커밍아웃도 안 했으니까, 게이 코드를 유머로 승화하기 위해 미친 애처럼 했어요. 말도 못해요. 그래서 예전엔 제가 맡았던 바비 역할이 되게 인기가 많았죠. 이젠 다른 역할을 맡은 배우도 웃음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바쳐주려고 해요."
홍석천은 올해 51세다. 커밍아웃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반면 많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밝히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개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아직도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고요. 대중이 알고 싶어하지만, 막상 확인했을 때 반응은 종잡을 수 없어요. 언젠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계속 나올 거예요. 제가 커밍아웃하기 전에도 저 같은 애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잖아요. 예전엔 빨리 나와주길 바랐는데, 이젠 안 나와서 고맙기도 해요. 제 쓰임새가 더 있잖아요." (웃음)
홍석천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운영 중이던 전국 13개, 이태원 7개 레스토랑을 정리했다 면서도 '여유가 생겼다'고 말하는 그다.
"저희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너무 좋지 않은 일이지만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일깨워준 사고라고 받아들였어요. 또 엄마가 차에 부딪혔는데도 고관절이나 머리는 괜찮고 팔이 부러졌거든요.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코로나 때문에 가게를 닫았지만, 코로나가 저를 툭 쳐주면서 '너 그동안 열심히 했어. 잠깐 쉬어봐'라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생각 아니면 몇억 원씩 손해 보는데 다신 못 일어날 걸요?"
그의 어깨가 무겁다. '이 바닥의 어르신'인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눈앞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끝에는 "내가 나서야 할 거 같다"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했다.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어요. '게이치 말아요'라는 채널인데, 앞으론 본격적으로 제 이야기를 나누는 채널로 만들어볼까 해요. 게이, 트렌스젠더 친구들이 유튜브를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조회 수 때문인지 너무 자극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그 입장도 충분히 알죠. 그래도 제가 한 번 총대를 메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