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m 높이에서 시원하게 물줄기가 쏟아지는 워터폴 가든이 고객을 맞는다. 인공 폭포 주변에는 숲에 온 것처럼 풀들이 무성하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뻥 뚫린 천장 사이로 하늘도 보인다. 한층 한층 올라설 때마다 드넓은 고객 휴식 공간과 유명 카페가 있다. 5층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는 쇼핑이 아니라 힐링하러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6층 복합문화공간 알트원(ALT.1)에서는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의 회고전이 열려 전시회도 즐길 수 있다.
빽빽이 들어선 각종 브랜드를 자랑하던 백화점들의 마케팅이 바뀌고 있다. 더 많은 브랜드를 유치해 고객에게 매출을 뽑아내려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고객들을 배려해 한 번 더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매출로 연결된다는 생각에서다. 카페와 맛집, 휴게 공간 등은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진화된 백화점의 마케팅 방식이다.
이는 최근 온라인 쇼핑으로 소비 패턴이 이동하며 꼭 필요하지 않으면 오프라인 점포를 찾지 않는 고객들을 끌어들이려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2월 말 개장한 더현대서울은 매장 한 층을 아예 정원으로 꾸미는 초강수를 뒀다. 상품 판매 공간을 늘리고 많은 브랜드를 유치해 매출을 높이려는 전략보다 고객 입장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거듭나는 데 중점을 뒀다.
각 층마다 카페와 휴식 공간을 배치하고, 통로 넓이나 높이도 기존 백화점보다는 훨씬 널찍하다. 더현대서울의 전체 영업 면적(8만9100㎡) 가운데 매장 면적(4만5527㎡)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나머지 절반을 실내 조경으로 채웠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15개 점포의 영업면적 평균보다 30% 가량 낮다”고 설명한다.
더현대서울의 공간 배치는 매출 하락을 감수한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위험한 승부수가 '홈런'이 됐다. 더현대서울은 오픈 일주일 만에 방문객은 150만 명에 육박하며, 매출은 당초 목표(130억 원)보다 3배 가량 높은 372억 원을 기록했다.
SNS(소셜네트워크시스템)에서 더현대서울과 사운즈 포레스트 인증샷은 하나의 유행이 됐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오픈 한달만에 더현대서울 관련 게시물이 7만 여건에 이를 정도다. 이대로라면 더현대서울의 올 예상 매출 6500억 원은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목표로 세운 7000억 원도 높여야 할 판이다.
현대백화점은 아예 다른 점포에도 자연친화적인 ‘리테일 테라피’ 적용 공간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달 목동점 7층에 약 800평 규모의 공간을 ‘유럽의 정원과 온실’콘셉트로 ‘글라스 하우스’를 꾸몄다. 기존 실내 정원까지 합쳐지면 7층 전체면적의 85%가 실내외 조경 공간으로 채워지는 셈이다.
AK플라자는 증강현실(AR)을 이용해 ‘나비가 날아다니는 화원’을 선보인다. AK플라자 분당점 1층 광장(피아짜 360)으로 백화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 AK플라자 공식계정에 들어간 뒤 광장 중앙에 설치된 ‘Blooming Wonderful’ 네온 사인을 스캔하면 노란 꽃들이 만발한 꽃밭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가상 현실 속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백화점의 얼굴인 1층에 명품과 화장품 매장을 두는 불문율도 속속 깨지고 있다. 백화점 1층 입구에 식품 전문관을 과감하게 전면 배치하는가 하면, 젊은 층의 발길을 끌만한 스니커즈 리셀(Resell·재판매) 매장이나 한정판을 파는 전문점을 배치하는 파격적인 시도도 이뤄진다.
지난해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1층을 아예 식품전문관으로 꾸몄다. 들어서는 순간 형형색색의 과일이 고객을 맞이한다. 리빙관과 패션관 등 2개 건물 중 리빙관 1층부터 지하 2층에 걸쳐 1400평의 공간을 슈퍼마켓을 비롯해 식품관으로 단장한 이색 도전이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1년 동안 리뉴얼을 마치며 1~2층을 패션과 F&B, 체험형 복합 시설 공간 등으로 꾸몄다. 화장품은 3층으로 이동시켰다. 국내 최초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소인 ‘아웃오브스탁’과 한정판 풋볼 레플리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오버더피치’와 함께 전기차 '테슬라 갤러리'를 오픈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 맛집을 유치하는 것 역시 백화점의 또다른 승부수다. 더현대서울은 유명 카페와 식당을 각 층으로 분산시켰다. 지하 1층에는 유명 돈가스 식당인 긴자바이런과 폴앤폴리나, 에그슬럿, 버틀러커피, 카멜커피를 입점시켰고, 6층에는 도원스타일, 순옥이네명가를 유치했다. 롯데백화점 노원점도 최근 리모델링에 나서며 1층에 쉐이크쉑을 유치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중동점에 ‘한샘리하우스’, 울산점에는 지역 최대 규모의 ‘한샘디자인파크’를 연이어 오픈해 높아진 홈퍼니싱 수요에 대응한다. 본점을 시작으로 동탄점, 잠실점까지 연내 3곳의 홈스타일링 큐레이션숍 ‘메종아카이브(MAISON ARCHIVE)’를 오픈해 고객 발걸음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다양한 서비스로 고객을 노린다. 특히 대형마트는 최근 썰렁한 주차장에 벤츠와 BMW, 폭스바겐 등 외제차 수리센터를 속속 입점시켜 공간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수리센터를 임대해 수익을 얻고 자동차 수리 기간을 활용해 장을 보는 고객을 노린 일거양득 전략이다.
롯데마트는 2019년 7월 BMW코리아와 MOU(업무협약)를 맺고 빠른 경정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PIT 서비스’를 부산점과 사상점에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에는 춘천점 지하 1층에 영업면적 60평(198㎡) 규모의 ‘폭스바겐 춘천 시티익스프레스’를 오픈했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말 영등포점 지하 2층에 ‘메르세데스 벤츠’ 수리센터를 입점시켰다. 이마트는 전기차 충전소를 확대하고 있다.
편의점은 전국 방방곡곡에 위치한 이점을 활용해 24시간 운영되는 종합 생활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은 택배와 공유 차량 서비스, 세탁, 복사 서비스까지 동네에서 슬리퍼 신고 웬만한 서비스가 죄다 가능해진 '슬세권 만물잡화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관객 수 급감으로 매출이 70% 급감하면서 고사 직전에 놓인 영화관 CGV는 아예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CGV 전국 14개 지점에 설치되는 ‘왓챠관’에서는 OTT(인터넷동영상서비스) 왓챠가 수입한 영화들을 상영하기로 했다. 또 영화와 여행을 결합한 상영회를 여는가 하면, 영화관에서 금융 강의를 진행하는 등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오프라인 매장들이 온라인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면서 “넓은 공간과 미학적으로 뛰어난 인테리어에 유명 맛집까지 꼭 들러야할 이유를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