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이란 핵 합의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유럽연합(EU) 측이 제안한 핵 합의 복원을 위한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거부했다. 미국이 회담 뒤 일부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보장하지 않는다면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과 유럽 3개국(핵 합의에 서명한 영국·프랑스·독일)의 최근 언행을 고려할 때 EU 측이 제안한 비공식 회담을 열 때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미국이 일방적 제재를 종료하고 핵 합의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EU 측은 미국과 이란에 비공식 회담을 제안했으며 수일 내로 구체적 회담 날짜가 정해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트럼프 전 정부는 2018년 5월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되살렸다. 바이든 정부는 핵 합의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이 먼저 핵 합의를 다시 준수해야 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면서 선(先)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이란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란 측이 당장 회담을 거부하고 나섰지만, 아예 회담 의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WSJ는 이란이 EU 측에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즉 EU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양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 단계적으로 합의에 이르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핵 합의를 위한 EU 측의 노력에도 미국은 여전히 이란 제재에서는 단호하다. 이란의 비공식 회담 거부에 대해 백악관은 28일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미국은 핵 합의 준수에 두 나라가 복귀하기 위한 의미 있는 외교를 기꺼이 다시 할 뜻이 여전하다”라고 밝혔다.
바이든 정권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 의지를 거듭 천명해왔던 것과 달리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미국 고위 당국자 발언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와 김정은 북한 정권 간 공식적 접촉이 없었다”며 “미국은 중국과도 북한 문제에 관해 실질적 소통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미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도발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바이든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WP는 비판했다.
사우디 관련 이슈에도 바이든 정권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지난달 26일 3년 전 일어났던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승인했다고 판단한 기밀 보고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보고서 공개와 함께 발표된 76명의 사우디 시민권자 비자 제한 제재에는 암살 사건의 핵심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제외돼 결국 인권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이든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과 함께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동맹국에도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자인 트럼프의 일부 대외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하거나 향후 협상 지렛대 활용을 염두에 두고 서둘러 뒤집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동맹국의 원성을 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부과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아직 유지하거나, 캐나다의 우려에도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19일 바이든 취임 후 처음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안보에서 유럽이 미국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고 언급했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미국과 독일의 이익이 항상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리 두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