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사람 신체와 비슷한 모양의 성기구)이 사회 풍속을 해친다고 볼 수 없어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리얼돌을 허용하는 판결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과 "사적인 영역이므로 국가가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
25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최근 성인용 여성 전신 인형의 수입통관을 보류한 김포공항 세관장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성인용품 업체 A사는 지난해 1월 중국 업체로부터 리얼돌 1개를 수입하려 했으나 김포공항 세관은 해당 제품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고 보고 통관을 보류했다. 이에 A사는 세관 처분에 불복해 관세청장에게 심사청구를 했지만, 결정 기한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오지 않자 법원에 보류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 물품은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 볼 순 없다"며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기구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된다"며 "은밀한 영역에서의 개인 활동에는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성기구는 성적 만족감 충족이라는 목적을 가진 도구로서 신체의 형상이나 속성을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다"며 "표현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는 것만으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대법원은 2019년 6월에도 한 리얼돌 수입사가 세관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 보류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세관 당국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1심과는 달리,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의 형상, 재질, 특징을 전체적으로 관찰할 때 노골적인 방법에 의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됐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에도 관세청은 리얼돌 수입통관을 허용하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관세청 관계자는 "여성 전신 인형, 이른바 리얼돌은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 통관 보류 대상이라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통관 보류처분 취소 판결이 최종 확정된다고 해도 현재로써는 리얼돌 수입이 전반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 제품에 대해서만 통관이 허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이나 특정 인물 형상의 리얼돌 유통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며 "관세청이 어떤 제품에 수입통관을 허용할지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통관을 보류하고, 조세심판원이나 법원의 판단에 따라 수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세청의 입장에 리얼돌 수입 업체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리얼돌 수입업체 부르르닷컴 이상진 대표는 "이번 소송은 2019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모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대법원에서 승소한 모델에 대해선 통관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마저도 제품의 옵션이 다르다는 이유로 통관을 막아 억울하다"며 "옵션이 다르단 이유로 다른 제품이라고 우긴다면 세상에 같은 제품은 어디에도 없다. 이 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현재까지 모든 재판에서 승소하고 있으며, 그 소송 비용은 패소한 세관이 부담해야 한다"며 "이미 대법원에서 확인해준 사안인데 왜 국민 혈세를 낭비해가며 억지를 부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단체의 반발에 대해선 "여성단체에서는 리얼돌이 여성 인권을 침해하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 세계 어디에도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규제하는 곳은 없다"며 "오히려 여성인권이 바닥인 이슬람권 국가들이 성에 대한 억압을 위해 규제를 하고 있다. 여성단체의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막연한 추정일뿐이며, 오히려 일반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반민주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리얼돌에 대한 논란은 단순 찬반양론을 넘어 남녀 갈등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를 보인다.
2019년 10월 이투데이에서 사흘간 20~30대 남녀 각각 40명에게 리얼돌 판매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남성 응답자의 77%(31명)는 리얼돌 판매에 찬성했으나 여성은 92%(37명)가 반대했다. 리얼돌 수입·판매에 대한 전체 의견은 반대가 57%(남성 9명, 여성 37명)를 기록했다.
리얼돌 판매를 반대하는 20대 여성 A 씨는 "법원의 판결이 게으르고 안이하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여성으로서 실제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초등학생 버전 리얼돌은 아동에 대한 잘못된 성적 환상을 심어준다고 반대하면서 왜 성인 여성 모양의 리얼돌에는 그게 적용되지 않냐"고 말했다.
20대 여성 B 씨도 "인형이든 인공지능(AI)이든 물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사회·문화적으로 착취적인 성문화가 굳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단순히 인형이 인격이 없으므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인형이 여성들이 쓰는 성기구와 뭐가 다르냐는 식의 일부 남성들의 주장은 혐오스럽다"고 역설했다.
반면,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에 동의하는 20대 남성 C 씨는 "리얼돌은 결국 단순 성기구일 뿐이고, 성기구에 인간의 존엄성을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보통 성기구 같은 것은 개인의 취향과 자유로 구매할 수 있는데 리얼돌만 금지해야 한다거나, 이게 강간이니 성추행이니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신 실존 인물이나 아동, 청소년의 형상을 한 인물을 만드는 것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대 남성 D 씨도 "개인이 성욕을 해소하는 성기구의 하나일 뿐인데 인간의 존엄성을 왜 침해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굳이 국가에서 나서서 제한해야 할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면 금지하는 것이 오히려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도 엇갈리고 있다. 리얼돌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므로 제작·유통·판매 모두가 금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입법적 보완책을 마련할 수는 있어도 시장에서 통용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리얼돌이 여성의 인권과 삶의 본업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 침해된다는 감각을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여성의 인격권과 자유, 그리고 인권에 대해서는 법원이 상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법원이 추상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로써 리얼돌 수입을 허용한다고 판결한 것은 굉장히 정확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승희 대표는 "한국에서 리얼돌에 대한 제작·유통·판매 모두가 금지돼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법원에서 계속 나오는 '음란'이라는 용어는 인권의 관점이 아니라 풍속을 문제 삼는 관점이다. 리얼돌이 여성의 기본권과 인격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유통돼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관점을 바꿔서 새로운 입법을 하는 게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리얼돌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이런 면에서 비판받을 제작물이라고는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대법원의 취지는 성과 관련된 여러 기구들이 통용되고 있는데 리얼돌만을 규제하고 시장에서 퇴출하는 게 법원의 자의로 가능하다는 판단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윤미 변호사는 "만약 규제를 한다면 입법적으로 보완을 마련할 수 있을지언정 지금 단계에서 수입조차 못 하게 하는 게 온당한지는 모르겠다"며 "규제라는 것은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만연히 반대하고 성적 대상화를 한다고 해서 시장에서 통용되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