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생선가게 앞에서 한 남성이 아내와 핸드폰 영상 통화를 한다. 카메라로 생선을 비추며 “이거 어때?”라고 물어보자 상대방은 “왼쪽이 더 좋아 보인다”고 답한다. 이를 지켜보던 상인 할머니는 “그게 뭐여?”라고 묻자 남성은 “디지털 세상이잖아요”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뭐? 돼지털?”이라고 외치고 화면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 디지털’이라는 문구가 뜬다. 2001년 한 대기업이 집행한 광고다.
밀레니엄 시대에 불었던 디지털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정부는 올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제시하고 △디지털 뉴딜 △온라인 수출 지원 △비대면 혁신 기업 육성 등에 대규모 예산을 편성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대기업을 비롯해 제조업, 서비스업 모든 업종이 정부의 주도 아래 디지털 전환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생존과 연관돼 있는 전환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소셜커머스와 애플리케이션, 온라인 주문은 진작 나왔던 서비스다. 유튜브나 SNS가 생활 깊숙하게 자리잡은 지도 오래다. 정부가 제시한 스마트 제조공장이나 스마트 의료, 5G·AI 융합 등은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해 오던 정책들이다. 모두가 집중하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해묵은 키워드가 국가 비전으로 튀어나오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있다. 현장에서는 위 광고의 할머니처럼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지원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AI(인공지능)이나 IT기술을 추가로 도입하지 않겠다고 답한 중소기업도 상당하다. 반면 급감한 매출을 막기 위해 일단 지원을 받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정부지원 사업계획서에 ‘비대면’ 키워드를 넣으면 통과 확률이 높다는 말도 곳곳에서 나온다.
모든 산업이 한곳에 치우쳐 있는 것은 옳은 현상이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기 위해 각 국가들이 다양한 신사업 먹거리를 찾는다고 혈안이 돼 있다. 우리는 정부의 주도 아래 디지털과 바이오에 갇혀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시장을 한가지 산업이 지배하게 되면 그만큼 위험성도 따른다. 스타트업도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모두가 한곳에 몰두하면 자칫 창의성과 다양성이 저해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역할은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소외된 곳을 찾아 지원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