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들도 부실 펀드 정보 받지 못해
#서울 구로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몇 십 년 동안 A은행만 이용해왔다. 김 씨 공장의 대출 담당자는 “미국이 6개월 안에 부도 날 일은 없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며 매일 김 씨를 찾아와 실적을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당장 운영자금 대출이 필요한 김 씨는 담당자의 얼굴을 계속 봐야 한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펀드에 가입했다.
금융 소비자의 대규모 피해를 초래한 사모펀드 사태가 불완전판매에 이어 ‘꺾기’까지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꺾기는 은행이 대출을 할 때 고객에게 강제로 예·적금, 보험, 펀드 등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것을 말한다. A은행이 판매한 B펀드(가칭) 가입자 상당수가 이른바 꺾기를 통한 불건전영업 행위로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A은행의 B펀드 판매 과정에서 꺾기 영업이 만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B펀드 피해자 198명 중 35%에 해당하는 69명이 법인의 대표 및 중소기업 사장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10명 중 4명은 이미 펀드를 판매한 은행에서 대출 상품을 이용 중인 중소기업 사장으로, 이들은 대출 실행 앞뒤로 몇 개월 안에 B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착수한 B펀드 관련 A은행 종합검사에서 △투자 권유 비희망 고객에게 판매 △투자자 정보 적용 오류 △거래 내용 확인 사항 대필 △상품 설명 이해 내용 대필 △고령자에게 부적정 투자 권유 △미자격 직원의 상품 판매 등의 사례를 적발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영업점 직원의 투자 권유를 원치 않았지만, 안정성을 내세운 PB들의 지속적 권유로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B펀드에 대한 자세한 검증 없이 100% 안전한 상품이라고 PB들을 교육시킨 본사의 상품 관리 및 검열 시스템 부실이 이번 펀드 사태의 피해 규모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PB들은 본사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B펀드의 부실 가능성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녹취록에 나오는 PB는 “환매 중단 사태가 심각해지자 PB들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먼저 본사에 설명회를 요구했다. 2019년 2월 본사에서 대책회의가 열렸고, PB들은 그때서야 해당 상품의 부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오모 본부장에게 직접 투자자 대상 설명회를 하라고 건의했더니 ‘피해자 모임이 생기고 집단이 생기면 대처하기 힘들어지니 개별적으로 응대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법률은 은행들의 불공정영업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꺾기를 통한 상품 가입 권유도 이에 해당한다”면서 “PB 등 영업현장 조직에 대한 교육 및 관리 강화를 통해 불완전판매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