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ㆍ애경산업 ‘가습기 살균제’ 관계자들 전원 무죄…"어떻게 이런 판결이" 울분

입력 2021-01-12 16:42 수정 2021-01-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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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살균제 성분 폐 질환, 천식 인과관계 입증 안 돼…안타깝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체에 해로운 원료 물질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대표이사와 관계자들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밝혀진 이후 10년 만의 선고다. 피해자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법부의 기만”이라며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SK케미칼ㆍ애경산업ㆍ이마트 관계자 등 11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ㆍ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CMITㆍMIT 성분은 앞서 옥시레킷벤키저ㆍ롯데마트ㆍ홈플러스 등 제조사 관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ㆍ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다른 성분이다. 신현호 전 옥시 대표는 징역 6년이 확정됐다.

‘가습기 메이트’ 폐 질환ㆍ천식 유발 증거 없어

법원은 CMITㆍ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 실험과 역학 조사 등이 이뤄졌으나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각 실험을 실행한 교수와 전문가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CMITㆍMIT 사용과 사망이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전문가는 ‘사람에게 이미 폐 질환 등이 발생했다는 전제를 하고 CMITㆍMIT 성분의 영향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동물 실험을 했지만, 뒷받침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재판부의 결론은 환경부가 CMITㆍMIT 함유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피해를 인정해온 것과는 상반된다.

재판부는 “모든 시험과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있는 환경부의 종합보고서는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기존 연구에 대해 추정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일종의 의견서에 그친다”며 “이 같은 추정에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장 “안타깝고 착잡하다”

유영근 부장판사는 이들에 대한 무죄 선고에 앞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로 인식되고 있다.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착잡하다”며 “그러나 2년 넘게 심리한 결과 CMITㆍMIT 성분은 유죄 판결을 받은 PHMGㆍPHG 성분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연구 결과가 추가로 나오면 역사적으로 (이번 판결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재판부로서는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 원칙의 범위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애초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은 처음 유해성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CMITㆍMIT 함유 제품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를 피했다. 이후 CMITㆍMIT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관련 연구 결과를 제출함에 따라 2018년 검찰 재수사가 시작됐고, 지난해 관계자들이 차례로 기소됐다.

법정 앞에서 눈물 흘린 피해자들

휠체어를 타고 코에 호흡기를 착용한 채 법정을 찾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는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조 씨는 “이 제품을 써서 죽어 나간 사람만 어마어마한 데도 어떻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가”라며 “옥시는 잘못이 있고 상품이 다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다 무죄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 유족 송기진 씨는 “지금까지 정부가 피해자를 인정한 건 가식이었나”라며 “지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만 4000명이 넘는데 옥시 제품의 원료와 SK케미칼, 애경산업 제품의 성분은 어떤 차이가 있나. 어떻게 이게 무죄인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장동엽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 간사는 “모든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가 나올 것이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학계의 보고와 피해자 등 증거가 충분한데 어떻게 아무 죄가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사법부에 다시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날 별도로 진행된 재판에서 PHMG 제조ㆍ판매에 관여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전직 직원 4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PHMG 성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관계자들이 유죄를 선고받은 옥시에 이 물질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SK케미칼 관계자들이) 업무 과정에서 다소의 부주의가 있었더라도 판매 경위 등에 비춰볼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과 상해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데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확한 판결 이유를 확인해서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과 관련된 자료를 인멸ㆍ은닉한 혐의로 기소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는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증거인멸을 실행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 전 홍보ㆍ총무 부문 전무는 징역 1년을, 이모 전 총무채권팀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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