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보다 양’에 치중했던 거래소, 손병두 이사장은 다를까?

입력 2020-12-20 13:12 수정 2020-12-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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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 거래소가 경쟁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한국거래소가 주식 거래를 독점하면서 증시 활성화의 수혜를 오롯이 누리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주식시장의 질적 발전에 기여했는지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상장사의 한계기업은 늘어가고 있는데 시장 건전성을 강해야 하는 거래소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거래소의 관피아(관료+마피아) 경영과 무관치 않다. 이사장 임기 이후 안전하게 영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정책에 최대한 발맞추고, 양적 성과를 거둬야 하기 때문이다.

21일 취임하는 손병두 신임 이사장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손 신임 이사장의 경영은 ‘활성화’보다 ‘안정화’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3월부터 재개될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제도 정비와 시장 진입·톼출심사 기능 강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시장 규율 기능 강화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18월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은 5454조2323억 원으로 전년보다 (2287조6130억 원)보다 138.4% 많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거래소의 올해 수수료 수익도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9월 14일부터 수수료 면제조치를 취함에 따라 올해 수수료 수익은 34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좀비기업’ 키우는 주식시장 =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인 기업 수는 727개로 집계됐다. 전체 상장사의 34%가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못 내는 이른바 ‘한계기업’인 것이다.

한계기업 수는 2017년 556개, 2018년 636개로 개수와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 러셀2000지수 내 한계기업 비중이 24%라는 점에서 국내 상장사의 부실률이 크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거래소가 이들 기업의 퇴출은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지난달 30일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제이케이가 상장이 유지된 상태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사태가 발생했다. 코스닥시장 개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동기 한국거래소 노동조합 위원장은 “모험자본 육성 취지 아래 거래소가 기술특례로 한 장짜리 증명서만 갖고 오면 상장을 시켜줬다”면서 “그런 기업들이 2, 3년 지나서 좀비기업(한계기업)이 되는데 이런 기업을 퇴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시장 감시자 맞나? = 거래소의 ‘시장감시자’로서 권위는 떨어졌다. 특히 2018년 ‘감마누’에 대한 거래소의 상장폐지를 결정을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정리매매 중인 주식이 다시 거래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 거래소의 결정을 법원이 뒤집었다.

감마누 소액주주들은 거래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감마누의 정리매매가 진행되면서 6170원이던 주가가 408원까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지난 8월 대법원의 판결로 지난 감마누는 부활에 성공, 2400원대에 거래가 진행 중이다. 거래소의 결정을 믿고 정리매매에 나선 주주들은 큰 손실을 봤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감마누 사태 이후 상장폐지 심사에 더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제대로 절차와 명분을 갖춰서 퇴출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자는 “대표적으로 올해 코오롱티슈진의 경우 개선기간을 1년 더 연장하는 결정을 하는 식으로 땜질처방에 급급한 모습,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살려주고 신라젠은 상장폐지를 논하는 등 비대칭적 규제를 하면서 시장 규율자의 역할을 스스로 잃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는 ‘관피아’에서 출발한다는 지적이 많다. 거래소 이사장 취임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5대 정찬우 이사장, 6대 정지원 이사장, 7대 손병두 이사장까지 모두 금융위원회 출신이다. 시장감시위원장 자리 역시 금융위 출신이 오는 것이 ‘관례’로 보일 정도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통상 관피아의 문제점은 정부정책에 발맞추면서 적극적인 경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기 이후 안정적으로 영전하기 위한 것이다. 정지원 이사장은 임기 만료 후 손해보험협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조에서 관피아를 반대하는 이유다.

이동기 위원장은 “과거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창조경제’, ‘모험자본 육성’에 발맞춘 경영을 하면서 거래소는 ‘자본시장은 돈만 공급하면 된다’는 기조로 움직였다”면서 “결국 이런 것들이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와 같은 사모펀드 사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시장 활성화 정책의 중심에 있던 손병두 신임 이사장은 금융위에서는 상장 활성화, 투자은행(IB) 활성화를 외쳤겠지만, 거래소에 왔다면 시장 건전성 강화, 진입 퇴출심사 강화, 투자자 보호 등과 같은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손 신임 이사장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수석실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경제금융 전문가다. ‘관피아’에 대한 우려가 있긴 하지만 정부와 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내년 3월부터는 공매도 제대로 재개된다. 손 신임 이사장은 금융위에서 공매도제도를 주로 다뤄왔다. 금융위 시절 그가 주로 언급한 것 처럼 개인투자자 공매도 접근성 제고와 함께 외국계 IB의 무차입공매도 등 불법 공매도 적발·처분에는 거래소의 역할도 보여야 한다.

한국 증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진입했고, 이에 따라 변동성이 큰 시장이 됐다. 거래소의 역할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공매도 과열 종목, 단기과열종목 등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고, 확실한 시장 규율자로서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과제가 신임 이사장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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