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중국 세관의 무역통계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의 대중 무역이 작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국제제재에다 국경봉쇄가 더해진 까닭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산업 활동이 크게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생필품뿐 아니라 산업 시설, 원부자재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이 대폭 줄어들었으니 산업 활동이 위축되었다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세 번째는 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감소와 내부 생산 위축으로 공급 부족이 심해졌을 터이니 물가가 오른다는 것 또한 논리적이다. 마지막 퍼즐은 환율이다. 북한의 환율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는 올해 수차례 북한 원화가 달러나 위안화에 대해 대폭 평가절상되었다는 것이다.
3중고 속에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화폐 가치가 크게 평가절상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까지 나온 설명 가운데 하나는 북한 당국이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금지하면서 원화 가치가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달러로 거래되던 외국인 상점에서도 원화로만 거래하도록 했다’는 북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증언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다. 국경이 봉쇄되어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대폭 줄어든 마당에 왜 갑자기 외화 확보가 필요해졌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화 사용 금지 조치가 주민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외화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서는 시장화 과정에서 달러나 위안화와 같은 외국 화폐가 북한 원화의 화폐 기능을 대체하는 달러라이제이션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외화가 가치 저장뿐 아니라 거래 수단으로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이 차제에 이런 현상을 뿌리 뽑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는 위기의 시기에 그런 정책은 더 큰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다. 소문 수준일 수 있지만 달러 가치가 급락하자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달러 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본 주민들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화폐개혁이 실패했을 당시 당 계획재정부장을 처형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로 들린다.
북한 원화가 절상된 또 하나의 이유는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화는 기본적으로 대외거래를 위한 것이다. 올해 북한의 대외무역이 70% 이상 줄어들었다면 수출을 통한 외화 공급이 줄어든 데다 수입을 위한 외화 수요도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10월에는 전월 대비 수입이 99% 줄었다는 보도가 있다. 대신 물가는 올랐다. 통상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나라의 화폐는 평가절하된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국경이 폐쇄되어 있다. 당장 국내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원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외화를 팔아야만 하는 처지에 있을 수 있다. 그 결과 시장에 외화 공급과 원화 수요가 동시에 늘면서 원화 가치가 절상되었을 수 있다. 대외거래가 막히다 보니 당장 외화를 쓸 데가 없어 외화의 수요탄력성이 크게 떨어져 외화 공급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설명도 완전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북한에서는 이미 달러를 포함한 외화가 거래 수단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외화를 쓰지 않고 헐값에 팔고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국이 외화 사용을 금지했다고 하지만 북한에는 ‘당국에 정책이 있으면 주민들에게는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원인에 대한 설명이 잘 안 되니 의미 부여도 조심스럽다. 공유경제를 지향하는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중요한 안전자산 역할을 하던 외화의 가치가 폭락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변화의 조짐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월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주민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가 내년 1월에 개최된다는 당 대회에서 무슨 말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