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본색 드러낸 스가 정권

입력 2020-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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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 정치학 전공)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8일 일본학술회의 회원 210명 중 과반에 해당하는 105명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6명을 탈락시켜 99명만을 임명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1949년 설립된 일본학술회의는 국가기관이면서도 정부로부터 독립된 조직으로 과학의 발전을 위해 정부에 조언이나 제안 등을 하는 권위 있는 기관이자 ‘학자의 국회’로 불린다. 그리고 회원 210명은 6년 임기로 3년마다 반수인 105명이 교체 혹은 연임되는데 그 경우에는 일본학술회의의 추천에 입각하여 총리가 회원을 임명한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정권의 법해석으로 총리에는 임명권이 있어도 임명거부권이 없었다. 그동안 그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스가 총리에 의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거부는 전례 없는 사태이다.

임명받지 못한 6명 중에는 헌법 학자이자 평화헌법 수호를 주장하여 아베 신조 전 정권에 의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에 반대한 오자와 류이치(小澤隆一) 도쿄지에이카이(東京慈惠會)의과대학 교수나 역시 같은 주장을 한 헌법학자인 마쓰미야 다카아키(松宮孝明) 리쓰메이칸대학 교수,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에 비판적인 오카다 마사노리(岡田正則) 와세다대학 교수, 구(舊) 일본군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권위자 가토 요코(加藤陽子) 도쿄대학 교수 등이 포함됐다.

원래는 일본학술회의 측의 추천을 받아 총리는 임명만 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는데 정권의 정책이나 견해와 충돌하는 학자들을 고의로 임명에서 제외한 스가 총리의 행위에 대해서 위법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임명거부 사건에 관해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되풀이하지만, 학문의 자유에 대한 스가 총리의 중대한 도전이자 위법이라는 반대 의사 표시가 각계각층에서 이어진다.

임명을 거부당한 교수들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 학생, 기타 여러 분야의 인사들이 소리를 높여 “이번 스가 총리의 임명 거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 “총리에게 임명거부권은 없다”, “스가 총리는 임명거부에 대한 설명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등을 주장하면서 파문이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스가 총리는 “105명 리스트를 보지 않았다. 제출된 99명 리스트만을 보고 그대로 임명했다”고 답변해 자신은 임명 거부를 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그러나 임명하는 과정에서 내각부 직원들이 105명의 리스트를 총리에게 보여주면서 6명을 임명 거부한 경위를 설명했다고 하니 몰랐다는 스가 총리의 답변이 거짓말일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스가 총리의 모교 호세이(法政)대학의 다나카 유코(田中優子) 총장이 성명을 내고 총리에 의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거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나카 총장은 며칠 전 스가의 총리 취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공표한 인물이기도 하다. 총리관저 앞에서는 즉각 학자와 학생 300명 정도가 모여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담당상과 여당 자민당은 이번 임명 거부 사건의 논점을 흐리기 위해 “일본학술회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일본학술회의를 행정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발표해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부터 항상 “정권의 견해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주장하는 관료는 정책 결정 라인에서 제외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그의 주장을 학술 분야로 확대한 행위가 이번 임명 거부 사건이다. 스가는 “일본학술회의 회원들은 신분상 준공무원”이라며 공무원에 대한 임명거부권은 당연히 총리가 갖고 있다는 뉘앙스로 비판을 피해가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법 해석을 변경한 이유, 6명을 임명하지 않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스가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 국민 대다수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스가 정권이 아베 전 정권에서 만들어진 정책이나 주장을 지키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이 되기 시작했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 문제로 야당들은 스가 정권에 대해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대로 가면 26일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 스가 총리는 야권의 강한 추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모호한 답변을 계속할 경우 정권에 대한 역풍이 심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스가 총리가 자신의 비서관들 조언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로 일어났다는 보도도 있다. 아베도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총리비서관이나 보좌관들의 의견을 쉽게 수용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등을 감행한 사실이 있다. 그 주역이었던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당시 총리비서관 겸 보좌관은 이번 스가 정권의 주요 포스트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스가 총리의 새로운 총리비서관이나 보좌관들도 강경파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도 스가와 가장 가까운 이즈미 히로토(和泉洋人) 총리보좌관이 개입해 6명을 임명에서 탈락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스가 정권의 이런 강압 정치 수법이 외교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이니치신문과 교도통신은 13일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된 한국 내 일본기업의 자산 현금화를 하지 않겠다고 확약하지 않는 한 스가 총리는 12월 서울에서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내 정치는 이미 독재 수준에 도달한 스가 정권이 외교에서도 강압적인 스타일로 나서기 시작했다. 스가 정권이 외교에서도 국내 정치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한국과의 제2의 경제 및 외교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우려가 있다. 스가 정권이 한국과의 외교에 있어 국내외를 잘 구별하여 이성적으로 움직일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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