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스가시대 개막] 딸기농사꾼 아들에서 日 최정점 오른 스가...그가 걸어온 길

입력 2020-09-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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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건강 악화를 이유로 중도에 물러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바통을 넘겨 받은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신임 총재의 인생 이력이 주목받고 있다.

스가 신임 총재는 세습·파벌 중심의 일본 정계에서 ‘뒷배경’ 없이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로 인해 ‘자수성가 총리’라는 말이 나온다.

1948년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의 딸기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스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해 골판지 공장 등에서 막노동을 했고, 2년 후 학비가 제일 싼 호세이대에 진학했다. 입학 후 그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야간부를 다녔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정치에 뜻을 품은 스가는 가나가와현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의 비서로 들어갔다. 11년에 걸친 비서 생활 끝에 1987년 요코하마시 시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처음 입문하게 된다. 요코하마에서 2선을 지낸 스가는 1996년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48세의 나이에 가나가와현 중의원에 당선되며 의회에 입성, 본격적인 정치 여정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이 지역구에서만 8선을 했다.

2002년 시작된 아베 총리와의 인연이 스가의 남은 정치 인생을 가르는 분기점이 됐다. 18년간 둘을 정치 공동체로 묶게 한 계기는 다름 아닌 북한 문제였다. 대북 강경 노선에서 아베와 스가는 서로 통했다. 2002년 일본에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반북 감정이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는 납치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자민당 총무였던 스가도 북한의 화물여객선 만경봉호 입항 금지를 강하게 주장했다. 아베는 스가에게 연락해 협력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파벌과 집안 배경이 전무한 스가가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주요 파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베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게 일본 정치권의 중론이다.

2006년 아베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스가는 총무상으로 발탁됐다. 아베 총리가 2007년 9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사퇴하자, 스가는 아베에게 “재기 하면 된다”고 위로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아베 총리가 2차 집권을 하면서 스가도 2인자인 관방장관에 올라 7년 8개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

스가가 아베 곁에 오래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둘의 정치적 DNA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스가의 한국 관련 망언은 아베와 판박이다. 스가는 2014년 중국에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하자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망언을 일삼았다. 스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언급하며 “청구권 문제는 이미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했다. 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대법원이 2018년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리자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자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 측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대법원이 피고기업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국내 자산 압류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선 한국산 제품 관세 인상, 한국 기업에 대한 대출과 송금 중단 등 모든 종류의 보복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1993년 위안부 강제 동원을 사과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것에 대해 “강제 연행을 입증하는 자료가 없는데도 (이를 인정한 것이) 큰 문제였다”고 했다.

독도도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스가 장관은 한국의 독도방어훈련에 항의하며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선 스가가 아베보다는 유연한 역사관을 가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스가는 2014년 선데이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제게는 그다지 국가관이란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가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말려왔다. 2012년 12월 관방장관 직을 맡은 이후 스가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없다.

한편 스가의 이력을 두고 부풀려졌다는 보도도 나온다. 스가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스가의 아버지는 딸기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골판지 공장에도 취직한 지 2개월 만에 그만뒀으며 대학 야간부를 다닌 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스가 장관은 호세이대 정치학과 주간부를 정식으로 졸업했다.

진정한 흙수저냐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세습 정치로 유명한 일본에서 뒷배경 없이 혼자 힘으로 권력의 최정점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2009년 이후부턴 당내 어느 파벌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만큼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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