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실패라는 이름에 대한 패러다임 시프트

입력 2020-09-09 18:00 수정 2020-09-0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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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숙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실패박람회’가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보통 박람회라고 하면 온갖 물품을 모아 벌여놓고 판매, 선전하는 것을 상징하나 정성적(물질의 성분이나 성질을 밝히는)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박람회, 그것도 ‘실패’라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요인을 모아 이루어진 ‘실패박람회’는 3년 전 첫 출발부터 우리 사회에 다른 관점의 메시지를 던진 것만은 분명하다. 실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대부분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이에 대한 사례와 고민을 공유하겠다는 것 자체가, 성공만이 최고 가치였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지만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시대를 맞고 보니, 앞으로 이 재난이 가져온 실패로 힘들어할 수많은 사람의 좌절과 고통을 이 ‘실패박람회’가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올해 시도된 ‘실패박람회’ 특징 중 하나를 보면, 실패를 이겨낼 방법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상담을 요청하는 ‘다시클리닉’이라는 코너가 홈페이지에 있다.

꾸준히 올라오는 상담 요청 글들은,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서 있는 번민까지 아주 다양하다. 실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예도 물론 있지만 공통된 고민 중의 하나는 실패할 것 같은 위기 대처와 가보지 않은 길에 관한 판단을 도와달라는 거였다.

사업의 위기 단계에서 힘들어하는 기업가들의 애로를 그간 많이 지켜봤었는데,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사항도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한 검증과 객관화,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사업을 벌일 때인지, 접을 때인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야만 하는지’ 도저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하얗게 밤을 새우는 고민 앞에서, 파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엉켜있는 절벽의 상황 앞에서, 이미 그런 고통의 길을 먼저 걸어보았던, 이미 한번 실패해 보았던 이들의 조언은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게 하여주는 객관화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힘들었구나!’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며 희망이 될 수 있는지 모른다.

나는 오늘 이 순간, 이 길을 걸어가 보지 못했지만, 그 길을 걸어 가본, 이미 실패해봤던 다른 누군가의 그 실패에 관한 나눔이 중요한 이유다.

그 실패에 관한 나눔과 교훈이, 그냥 좌절만 하는 사람들에서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들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구인 구직플랫폼인 사람인에서 469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코로나 재확산 시 경영 전망을 알아본 결과 10곳 중 8곳이 경영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응답한 기업의 77.7%는 올 상반기 코로나19 사태로 경영 악화를 이미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소상공인의 폐업 지원을 하는 소상공인 재기지원센터에서 급히 편성 받은 3차 추경 예산 90억 원의 집행률은 8월 말 기준 1.3%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큰 위기 상황에선 폐업하고 다른 사업장을 꾸리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정작 폐업을 하는 건수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책이 조금 더 세밀했더라면 폐업 예산을 실질적인 사업 운영자금으로 더 지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예산 전용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위기를 겪고 있는 수많은 소상공인에게 집적 지원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소상공인 영역밖에 모르는 컨설턴트를 고용하여 치킨집을 하다가 힘들어진 소상공인을 다시 빵집 하라고 폐업 컨설팅하는 우는 더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절대적인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에게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을 넘나들 수 있는 사고의 확장과 생존 방법론에 대한 현실적 대책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위기와 폐업 사이 버틸 수 있는 생계 지원을 여러모로, 직접 해야 한다.

정해져 있는 게 정답이라고 우기지 말고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쥐어 짜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정 의원이 최근에 발의한 창업공제사업기금 설치에 대한 법안은 고무적이다. 창업공제사업기금이란 초기 창업자들이 폐업, 부도 등 사업실패나 위기에 처하면 생활안정 및 재창업 기회 제공을 위한 공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인은 실업 급여도 있고 퇴직금도 있어,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 최소 몇 개월간은 생존할 수 있는 안전망이 되고, 다음 재도약을 위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데 중소기업가, 소상공인들은 창업 리스크에 대한 안전망이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한 정책 필요성을 당시 중소기업청에 제안하여 박정 의원이 2017년 발의하였다가 통과되지 못하고 이번에 다시 발의된 것인데 이번만큼은 꼭 좀 통과가 되어 위기에 처한 수많은 기업가의 생존과 재도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경기도가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그저 긴급 대출을 시작한 것은 결과의 실패와 상관없이 생존의 절실함을 먼저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구세군 대한본영이 중산층에서 바로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는 미국의 코로나 경제 위기의 예를 들며 다각도의 지원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도 정답만을 찾아서는 방법이 안 된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정답 없는 실패의 기록을 매번 갈아치울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느 순간 문득 새로운 성공의 패러다임 경영(승패가 엇갈리던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을 윈윈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기업 경영관)을 이루어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정답이 없는 시대, 실패라는 이름의 거울을 매일 보는 것이야말로 ‘패러다임 시프트’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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