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트럼프의 힘

입력 2020-09-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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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가 행진을 거듭하던 미국 증시가 갑자기 고꾸라지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멘붕에 빠졌을 거다. 특히 한국에서 동학개미운동을 하다가 성에 안 차 애플·테슬라 같은 미국 블루칩에 거액을 넣은 서학개미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하지만 백만장자가 되기를 꿈꾸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받은 실업급여까지 톡톡 털어 개인연금저축에 쏟아부은 미국인들만 할까.

증시가 갑자기 크게 요동치자 미국 언론들은 ‘401k’ 투자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며 불안한 가입자들의 심리를 다독이고 있다. 401k란, 미국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 401조 제k항에 의거한 미국의 개인퇴직연금저축제도다. 매달 일정액의 퇴직금을 회사가 근로자 계좌로 넣어주면 근로자가 이를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 자기 퇴직금은 자기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미국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발명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며, 가장 손쉽게 돈을 모을 수 있는 축북’이라며 ‘401k로 백만장자 되기’ 노하우와 성공담이 쏟아진다. 무엇보다 401k는 금수저를 물고 나온 일부 계층을 위한 게 아니라, 평범한 급여 근로소득자들을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결정판으로 평가된다.

이 401k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시 혹은 영구 실직자 신세가 됐어도 개인퇴직연금계좌(IRA) 저축을 거르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렸으니 말이다. 최근 피델리티인베스트먼츠가 분기별 IRA 저축 동향을 분석한 결과, 2분기 IRA 평균 잔고는 11만1500달러(약 1억3300만 원)로 1분기보다 13%나 늘었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과 셧다운, 5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IRA 저축을 막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기업들도 401k 매칭자금(급여의 3~6%)을 성실하게 납부했다. 중앙은행과 의회가 전례 없는 규모의 경제 지원을 단행하면서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확산하고, 1분기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회복 궤도에 오른 덕분이다.

401k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면서 401k 수익률도 꽤 짭짤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하려면 현금 자산이 최고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박힌 것이다. 현재 부(富)의 사다리로 부동산에만 목매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게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힘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 사용이 임박해 경기 회복 기대감도 커지는데, 주식시장까지 강세장을 이어간다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더 나아가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의 뒷심은 무섭다.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에 처지던 트럼프는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지지율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는 2016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선거 직전까지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밀리던 트럼프는 세 차례의 TV 토론 후 여론조사에서 모두 완패하고도 결국 백악관을 차지했다.

이는 ‘승자독식제’를 취하는 미국 선거공학이 작용한 것이지만, 사실은 유권자들이 그만큼 ‘실리’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줄곧 침묵하던 ‘샤이 트럼프(숨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마지막에 선거의 판을 뒤집은 것이다.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재선 공약 앞에서 ‘미국을 다시 존중받게’ 만들겠다는 바이든의 공약이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집권 1기 때보다 더욱 혹독하고 이기적이 될 수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각종 다자간 틀을 한층 더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주둔 미군 감축,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관세·무역 전쟁의 전선도 더욱 광범위해질 수 있다.

코로나19 만큼 짙은 불확실성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것이다. 한가하게 정권 지키겠다고 네 편 내 편 갈라 남 탓 공방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권을 지키고 싶다면 우리 국민에게도 실리를 쥐어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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