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이 ‘절망의 나라’로 묘사되는 주된 이유로 세계 최악의 코로나 감염 사태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공화당 정부가 지속적으로 사회보장 지출을 축소한 결과 사회안전망이 붕괴되면서 자살과 알코올·마약중독에 의한 사망자가 매년 8만 명을 뛰어넘으며 급증하고 있는 사실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적 문제들의 이면에 있는 구조적 경제·사회적 문제를 살펴보면,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미래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이처럼 미국이 ‘절망의 나라’로 주저앉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 여력이 점차 고갈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근까지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있었던 힘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뒷받침해주는 최고의 경제력과 기술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력과 기술력은 기술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개발 투자에 의해 결정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자본축적, 곧 저축이다. 미국 경제가 최고의 성장세를 보였던 1960년대 저축률은 11.5%에 달했으나, 최근 순저축률이 국민소득 대비 1.4% 수준으로 떨어진 사실이 미국의 성장잠재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보다 더 심각한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오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까지 붕괴되면서 승자독식,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시스템이 고착되었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예가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그랬고 이번 코로나 위기에도 마찬가지로, 미국 대다수 기업의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절감 전략이 임금 삭감이나 노동력 해고라는 것이다. 또한 위기 때마다 ‘양적완화’라는 이름의 무제한적 돈 풀기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이렇게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결국 투기적 자산투자 재원으로 활용되어, 실물경제는 추락하는데 주가는 폭등하는 미스터리가 연출되고 있다. 즉 올해 2분기 실물경제는 지난해보다 40%나 위축되면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동안, 전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84%를 보유하고 있는 소득 상위 10%의 부자들은 정부의 긴급경제지원 정책으로 소득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는 미국 경제의 현실이 곧 미국 경제를 절망으로 몰고 있는 요인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바이든이 11월 대선에서 당선되면 이런 미국의 비극이 끝날 것인가? 비관적 시각으로는, 바이든의 유일한 경력은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선택돼 8년 동안 부통령을 한 것뿐, 아무런 정치적 신념도 돌파력도 보인 적이 없는 ‘백인 부잣집 도련님’일 뿐이라는 냉소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정치경제 질서의 원천이었던 브레튼우즈 체제를 개인적 욕망을 위해 완전히 뒤흔들어온 트럼프를 퇴장시킨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더하여 규범과 합의에 기반한 다자주의 체제가 보호무역을 앞세운 양자 간 압박과 대결의 국제질서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희망적인 대목이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것보다 다자주의적 원칙과 합의에 기반한 정책 노력이 장기적인 정치적 기반을 쌓는 훨씬 좋은 길임을, 바이든뿐만 아니라 주요국의 모든 정치지도자가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은 모든 세계시민이 할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도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출마는 고무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