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세계은행(WB)의 자료를 인용, 올해 개발도상국으로 보내지는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이 약 20% 급감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감소는 1980년대 WB가 해당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낙폭이자, 2008년 금융위기 때 하락 폭의 4배 이상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인도인, 필리핀인, 멕시코인 등 해외에서 일하는 수천만 명의 개발도상국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자국으로 송금한 금액이 역대 최대인 5540억 달러(약 663조 원)를 기록했다. WB에 따르면 이는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외국자본의 직접투자액보다 많으며, 해외 정부 개발 원조액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이러한 송금액의 급감은 그 돈에 식비, 연료비, 의료비 등을 의존하는 전 세계 수많은 개도국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남아시아에서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는 가정들은 담보대출금과 수업료를 낼 여유가 없다.
실제로 엘살바도르에서는 지난 4월 송금액이 40%가량 급감한 2억87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식량 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 지역 자선단체들이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가운데, 빈민가 거주자들은 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신호를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집 밖에 하얀 깃발을 높이 매달았다.
‘세계의 옷 공장’이라 불리는 방글라데시 또한 의류 수출이 85% 급감한 데다가, 지난 4월 이주노동자의 송금액까지 25% 줄어들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이 되레 늘어난 바 있지만, 이번만큼은 감소를 피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은 적게는 5%에서 많게는 20%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필리핀은 과거 2007년~2009년 사이에 미국발 송금은 줄었지만, 호주·카타르·일본 등지에서의 송금이 증가하면서 전체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이 21% 급증했다.
니콜라스 마파 ING그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주노동자의 다양성 등에 따라 과거에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었던 필리핀도 코로나19가 촉발한 이번 위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필리핀은 해외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며, 지난해 이들이 송금한 금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거의 10%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