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ㆍ25 70돌에 생각하는 ‘낙동강 오리알’

입력 2020-06-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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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북한연구실장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몰아닥침으로써 경제가 붕괴하며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들이 스스로를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고 하곤 했다. 이 말은 경제위기로 직장을 잃은 한 집안의 가장이 오갈 곳이 없는 처량함을 한탄하는 뜻으로 들린다.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의 유래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던 1950년 8월 4일의 일에서 시작된다. 낙동강 변 다부동에 국군 제1사단 12연대 11중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앞서 7월에 김일성이 충주에 내려와 “8·15 광복절을 부산에서 치르자”고 명령하자 인민군은 수령 지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낙동강 도하를 필사적으로 시도하였다. 당시 전황은 낙동강 전선을 제외한 나머지 국토가 인민군에 점령돼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에 부닥쳤고, 워커 장군이 남하하는 인민군에 맞서 유엔군을 진두지휘하였다. 미국 본토에서는 낙동강 방어가 더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전면 철수를 검토하였으나 워커 장군은 낙동강 사수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워커 장군이 낙동강에서 북한군을 50여 일 붙들어 둠으로써 인천상륙작전(9월 15일)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낙동강을 방어하고 있던 아군은 평지에 강을 끼고 주둔한 인민군을 높은 고지에서 관측하며 공격할 수 있어 유리한 입장이었다. 총격전이 벌어질 때 유엔군 전투기에서 네이팜탄을 퍼부어 적 진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수많은 포탄에 인민군들이 맥없이 당하는 장면을 보고 사기가 오른 국군은 기관총의 총열이 벌게질 때까지 집중적인 포화를 퍼부어, 도하 중이던 인민군들이 낙동강에 빠져 떠내려갔다. 그 장면을 보던 11중대 강영걸 대위가 “야! 낙동강에 오리알이 떨어진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후 ‘낙동강 오리알’은 집단이나 단체 속에서 이탈하여 낙오된 상황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 됐다.

기원전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을 받으며 오갈 데가 없는 상태로 2000년 동안 방랑 생활을 했다. 어쩌면 유대인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암담하고 참혹함 속에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겠다. 6·25 전쟁에서 남북한 모두 ‘낙동강 오리알’ 신세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은 북의 기습 남침에 밀려 낙동강에 이르렀다. 만일 그때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지 못했다면 처량하게 제주도로 밀려가거나 보트피플이 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었다. 북한군도 마찬가지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아래위로 포위됨으로써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즉 상륙에 성공한 유엔군은 아래로 인민군을 공격하고 낙동강 전선을 지키던 국군은 위로 거센 공격을 함으로써 북한군은 ‘낙동강 오리알’ 같은 샌드위치 처지가 되었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낙동강 오리알’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나라 잃은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자들의 멸시와 차별 속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2000년이라는 역경(逆境)의 세월을 보내야 했음은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에서 유추해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할 것이다. 오갈 데 없는 ‘낙동강 오리알’과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국력을 키우고 자주국방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일 국가가 ‘낙동강 오리알’과 같은 처지가 되면 국제적으로 소외되는 것은 물론 국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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