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B(투자은행),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주력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증권사들이 전문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각자 대표 체제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 KB증권 등 초대형 IB를 비롯해 교보증권, KTB투자증권, 신영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도 각자 대표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교보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들어서 단독 대표 체제에서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달 25일 유진투자증권은 이달부터 유창수ㆍ고경모 대표이사로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교보증권이 김해준 단독대표 체제에서 김해준ㆍ박봉권 각자 대표 체제로 변경됐다고 공시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각자 대표 체제를 선택한 유진투자증권의 경우 유창수 대표는 앞으로 유진그룹 금융 계열사 전반에 대한 전략을 맡고, 고경모 부사장은 유진투자증권의 경영을 총괄하게 된다.
또한 오는 19일 정기 주총을 개최하는 신영증권은 지난 2월 승진한 황성엽 사장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원종석 부회장과 함께 지난 3년간 각자 대표로 회사를 이끌어 온 신요환 대표는 퇴임하고 황 신임사장이 원 부회장과 함께 기존과 같은 각자 대표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1인 대표 체제를 갖추고 있는 타 업종과 달리 증권업계는 유독 각자 대표 체제가 일찌감치 구축돼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016년 통합법인을 출범하면서 최현만ㆍ조웅기 각자 대표 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고, KB증권도 지난 해부터 김성현ㆍ박정림 각자 대표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전문 분야인 IB 부문을, 박 사장은 WM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KTB투자증권의 경우 전문 분야를 두고 각자 운영하는 체제라기보다는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과 전문 경영인의 모습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 3월 이병철 부회장과 최석종 사장이 각자 대표 체제를 갖췄는데, 이 부회장은 증권 대표이사 역할과 함께 KTB그룹 전체를 총괄하고 최 사장이 증권업 전반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가 이처럼 각자 대표 체제를 갖추는 것은 서로 분야를 나눠서 다른 대표들의 동의 없이도 맡은 분야의 총괄 권한을 갖고 사업 결정과 추진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있어서다. 그 때문에 효율성이 높고 사업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공동대표체제와 비슷하지만, 공동대표 체제에서는 대표이사 간에 합의를 거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따라서 빠른 시장 대응이 필수인 증권업계에서는 향후 각자 대표 체제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실적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각자 대표 체제가 어떤 힘을 발휘할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업무 영역이 과거보다 많이 늘어나면서 전문성과 효율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증권사마다 각자 대표 체제를 자사에 맞게 다르게 적용하면서 최대한 효율성과 실적을 높이려는 방편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