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닥뜨리며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국내 정유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고삐를 죈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 폭락에 따라 정제마진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며 석유제품을 팔수록 손해인 상황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석유 제품의 수요까지 감소하자 발빠르게 유동성부터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투데이가 24일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S-OIL)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등 단기 유동자산을 계산한 결과 9조551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말 7조4607억 원보다 28.02% 증가한 수치다.
단기 유동성 증가폭이 가장 높았던 곳은 에쓰오일이었다. 에쓰오일의 지난해 말 단기 유동자산은 2882억 원에 불과했으나, 3개월만에 1조5044억 원으로 무려 421.95% 급증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단기 유동자산을 전년 말보다 16.95% 증가한 5조3080억 원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GS칼텍스의 단기 유동자산은 13.98% 늘어난 2조410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와 반대로 현대오일뱅크는 1분기 단기유동자산이 3개월 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4858억 원에 달했던 단기 유동자산은 1분기 말 3286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이는 연결 자회사인 현대케미칼의 중질유 분해설비(HPC)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줄어든 부분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 자체의 단기 유동자산은 크게 줄지 않았다"며 "현대케미칼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사들이 이처럼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린 데는 이미 시황 악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대규모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까지 발생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1분기에 국내 정유사의 손실액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4조4000억 원까지 확대되며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것으로도 현재의 위기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경영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도 도산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정유사들로서는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분간 정유사의 유동성 확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래깅 효과(유가 상승으로 인해 제품 가격이 올라 실제 석유제품을 판매했을 때 정유사가 얻는 마진) 등이 기대되면서 시장 회복의 조짐은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았고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수요 회복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은 장밋빛 전망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상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2분기에도 여전히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정유업계도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