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는 우리가 어릴 적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이라고 흥얼거리며 부르던 미국의 국민 음악 ‘오, 수재너’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서부 개척 시대 금광을 찾아 달려간 미국인들의 감정과 애환이 담겨 있는 노래이다. 현장에 가면서 미국에서도 멀고도 먼 이곳까지 와서 설 명절에도 땀 흘리는 우리 직원들에게 뭉클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해방 운동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에서 한국의 변압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전압을 조정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전압을 바꾸는 기계가 변압기이다. 변압기를 통해 전달하기에 적절한 상태가 된 전기는 송전, 배전이라는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한다. 전압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전기를 전달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과학과 기술의 영역이다. 아울러 그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경제의 영역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전기 기술의 상용화를 두고 과학과 경제가 부딪히는 장면은 작년에 개봉된 영화 ‘더 커런트 워(The Current War)’에 잘 묘사되어 있다. 전구(電球)를 발명한 에디슨은 직류 방식으로 미국 전역을 밝게 하여 밤을 없애겠다고 공언한다. 이에 맞서 웨스팅하우스는 경제적으로 저렴한 교류 방식을 채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결과 경쟁의 결과가 오늘날 전기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소비자가전전시회)에 한국의 많은 기업인이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참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물결은 우리 생활의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140여 년 전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세기의 자웅을 겨루었던 시카고 국제박람회의 모습이 데자뷔로 연상되는 대목이다.
세상은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고 우리는 현재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전기에너지가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했다면, 지금은 전기에너지가 세상을 밝게 하는 기능을 넘어서 전기차, 컴퓨터, 인공지능 등 새로운 세상을 움직이는 주류 에너지(Primary Energy)가 됐다는 점이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도 사용하고 원자력도 사용한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전기를 만들기 위해 발전소는 대형화돼 왔다. 전압이 높을수록 전기의 전달비용을 줄일 수 있기에 변압기도 용량이 점점 커졌다. 이렇게 대형 발전소, 초고압 변압기를 통한 전기의 유통을 집중형 전력체계라 한다. 큰 공장에서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대량 생산하여 싼 가격으로 전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어느 나라나 발전 도상에 있을 때는 집중형 전력체계를 통해 전기를 공급한다. 경제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이 그래 왔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 들어 바야흐로 분산형 전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환경문제도 최소화하고 안전에 대한 우려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분산형 전원의 시대에 적합한 에너지원은 태양광,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진 선진국들은 요금을 더 내더라도 분산형의 장점을 선택하는 추세이다.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대한민국도 집중형에서 벗어나 분산형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속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 하루라도 빨리 분산형으로 갈 것인지, 비용을 고려하여 속도 조절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실용적 선택의 문제이다. 실용의 문제가 이념으로 묻히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