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하늘에 묻다’는 한마디로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 영화이다. 조선만의 시간과 하늘을 갖고자 했던 두 천재가 만나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국왕이 노비를 불러 국가의 중대사를 맡기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세종은 능력우선주의로 원나라 기술자를 아비로 둔 관노 장영실을 면천하고 국익에 유익한 발명품을 만들어내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세종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백성을 위해서라면, 조선을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어떤 출신이라도 인재를 불러들여 쓰임을 다하게 만드는 실질 숭상의 군주였다. 이는 백성을 긍휼히 여겨 훈민정음 창제로까지 이어졌다.
해시계(앙부일구)의 약점을 극복한 장영실의 자격루는 15세기 당시 조선의 과학기술이 최고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또한 측우기는 이탈리아 가스텔리보다 200년 앞선 기술이었으며, 혼천의 등 과학적인 기구를 이용하여 하늘을 관측한 경우는 아랍과 중국뿐이었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세종과 장영실의 특별한 우정은 세종 24년에 일어난 ‘안여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최고의 과학 발명품을 만들어 내던 장영실이 가마 하나를 온전히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영화 기획은 시작된다. 이후 장영실은 문책을 받아 장 80대를 맞고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지며 행방이 묘연해진다. 영화는 사료를 토대로 장영실이 의문만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된 작품이다. 사대주의에 물든 사대부의 음모와 세종의 정치적 부담이 엮이면서 이야기는 가파르게 진행되는데, 이 부분을 얼마나 관객이 설득력 있게 받아줄지가 흥행의 관건이 될 듯하다.
어쨌든 공교롭게도 장영실의 행불 이후 부국강병의 토대를 닦았던 조선은 급격하게 문약의 나라가 되고 만다. 세종대 이후 자연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전은 두드러지게 더뎌졌고 사농공상의 사회체계가 공고화된다. 만약 제2, 제3의 장영실이 계속 나왔다면 아마도 조선의 운명은 상당히 바뀌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