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CJ 우선주 184만 주(1220억 원)를 절반씩 나눠 자녀인 이경후(34) CJ ENM 상무와 이선호(29) CJ제일제당 부장에게 증여했다. 회사 측에서는 이번 증여가 경영승계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나, 재계에서는 CJ그룹의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재현 회장은 9일 CJ 신형우선주 184만 주를 이경후 상무와 이선호 부장에게 증여했다. 신형우선주는 보통주보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의결권이 없다. 따라서 이번 증여를 통한 보통주 지분 변화는 없다. 다만 신형우선주는 10년 후인 2029년 보통주로 전환된다. 재계에서 우선주 증여를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이유다.
증여되는 주식의 한 주당 가격은 약 6만6000원으로 주식 가액은 한 사람당 610억 원씩 총 1220억 원 규모다. 주식 증여로 이 회장이 부담해야 하는 증여세는 7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앞서 CJ그룹은 비상장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의 IT부문을 분사해 CJ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하고 두 회사의 주식 맞교환을 결정했다. 재계에서는 이 작업 역시 승계를 위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이 상무와 이 부장이 보유한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이 지주사 지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7일부로 이 부장은 CJ 지분 2.8%를, 이 상무는 1.2%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더해 이번에 증여받은 신형우선주가 10년 후 보통주로 바뀌면 이 부장은 CJ 지분 5.1%를, 이 상무는 3.8%를 갖게 된다.
현재 CJ는 42.07%의 지분을 가진 이 회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장의 마약 혐의 기소로 임원 승진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이 회장이 주식 증여를 통한 승계 작업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정황상 장자승계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평가받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CJ그룹의 경우 최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이재현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해 온 만큼, 자녀로의 승계 작업이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주식 증여를 통해 승계 작업 시작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무구조 악화에 따라 ‘비상경영’을 선언한 CJ그룹은 유후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CJ그룹은 최근 서울 가양동 부지와 건물, 구로동 공장 부지, CJ 인재원 등의 매각을 통해 총 1조1328억 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CJ는 최근 슈완스(CJ제일제당), DSC로지스틱스(CJ대한통운) 등의 인수에 성공했으나 부채비율 급등으로 재무 구조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비상경영을 선언하며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해왔다.
한편, CJ그룹 관계자는 “이번 증여는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증여세를 납부하고 본인의 주식을 자녀에게 증여한 것”이라며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지분 증여일 뿐 승계 작업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자산 매각에 대해서도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한 조치”라며 “승계 작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