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다섯 번째 댄버스' 신영숙, 그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입력 2019-11-20 13:46 수정 2019-11-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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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로 시작한 필모그래피 "오디션 1등 해도 탈락되기 일쑤였죠"

▲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 (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 (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
올해 데뷔 20주년이다. 20대엔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는데, 한작품 한작품 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주연의 자리에 올랐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단계별로 무대에 선 뮤지컬 배우 신영숙에게 오디션은 ‘인생’이다. 쉬지 않고 일했다. 주변에선 그에게 ‘시간을 거스르는 배우’라고 한다. 40대인 그에겐 지금이 전성기다.

최근 서울 중구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뮤지컬 ‘레베카’에 댄버스 부인 역으로 출연하는 신영숙을 만났다. 16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레베카’가 개막하기 전 가진 만남이다. 그는 2013년 초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총 다섯 시즌 연속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게 됐다.

“초연 때 댄버스 부인 역할에 대한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오리지널 캐스트의 공연 영상을 봤어요.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넘버 ‘레베카’의 멜로디가 상당히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관객들도 무대를 보고 ‘레베카~’ 부르잖아요.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오디션을 봤어요. 다행히 ‘모차르트’와 같은 작곡가(실베스터 르베이)더라고요. 그분은 제 목소리가 서늘하면서도 세다며 음색이 댄버스 부인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말해주셨어요.”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의 대표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소설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다. ‘엘리자벳’,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의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가 꾸린 작품이다.

영국의 맨덜리 저택의 주인인 막심 드 윈터(류정한ㆍ엄기준ㆍ신성록ㆍ카이), 실종된 그의 아내 레베카에 대한 집착과 광기를 보이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댄버스 부인(신영숙ㆍ옥주현ㆍ장은아ㆍ알리). 막심과 사랑에 빠진 맨덜리 저택의 새 안주인 나(이지혜ㆍ민경아ㆍ박지연)가 풀어가는 서스펜스 로맨스다.

한 작품에 5번 출연하는 것도 흔치 않은데, 신영숙은 한 역할만 다섯 번째 맡고 있다. 신영숙은 이번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면서 레베카를 잃은 슬픔보다 분노를 강렬하게 표현할 거라고 했다.

“제 안에 쌓인 삶의 경험들이 캐릭터에 녹아나는 것 같아요. 댄버스 부인을 몇 년에 걸쳐 소화하다 보니 내면의 연기가 더 깊어진달까요. 처음에 할 때는 노래를 파워풀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이코 역할에 초점을 맞춰서 외면적인 면만 중시했다면, 다섯 번의 시즌을 거치면서 표현력에 집중하게 됐어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신영숙은 20대 때 오디션에서 떨어져서 울면서 집에 갔던 기억들이 많다.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작품에서도 전화로 탈락 통보를 받았다.

“뮤지컬만 하다 보니 대중적인 인지도는 부족하죠. 어떻게 하면 그 부분을 메꿀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지금보다 인지도가 더 부족할 땐 한 뮤지컬 오디션에서 1등을 했지만 출연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선택되지 못한 좌절감이나 체력적으로 힘이 들 때 관객이 힘을 줘요. 팬들이 주는 편지를 다 읽는데, 제 공연을 보고 힘낸다는 이야길 들으면 저도 힘이 나요.”

▲올해로 데뷔 20년이 된 배우 신영숙에겐 지금이 전성기다. (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
▲올해로 데뷔 20년이 된 배우 신영숙에겐 지금이 전성기다. (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

뮤지컬 팬들에게 신영숙은 ‘황금별 여사’로 불린다. ‘모차르트’에서 발트슈테텐 남작 부인으로 분하며, 대표 넘버인 ‘황금별’에 ‘여사’가 붙은 것이다. 17년 전 뮤지컬 ‘이’에서 장녹수 역할을 맡으면서 얻은 ‘마마’라는 별명도 있다.

뮤지컬 배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엘리자벳’ 공연에 올랐을 적이다.

“예전부터 꿈꿔오던 역할이었는데, 엘리자벳 제작사인 EMK에서 작품을 가져오기도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그 공연을 본 제 팬이 우리말로 다 번역해서 책을 만들어서 제게 선물을 했어요. 엘리자벳 초상화에 제 얼굴까지 합성해서 이 역할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꿈을 심어줬죠. 지난해 드디어 엘리자벳과 만나게 됐어요. 십 년 가까이 한결같이 응원해준 팬과 엘리자벳 첫 공연 후 공연장 로비에서 만나서 기쁨을 공유했어요. 눈물바다가 됐죠. 꿈의 무대를 팬들이랑 함께 만든 것 같아서 그때가 잊히지 않아요.”

30대 후반부터 한 작품의 ‘타이틀 롤’이 돼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 신영숙. 그는 여전히 스스로 기량을 다지고 있다. 연습이 끝나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연기나 노래 선생님을 찾아간다. ‘웃는 남자’, ‘엘리자벳’, ‘엑스칼리버’, ‘맘마미아’에 이어 ‘레베카’까지 그는 때늦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늦게 피는 꽃처럼,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40대에 와서 주연을 많이 하고 있어요. 보통 여배우와는 다른 행보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습니다. ‘영숙이’라는 이름처럼 인간 신영숙은 참 평범한데, ‘너 어떻게 이렇게 활동하고 있니’라고 스스로 질문할 때도 있어요. 뮤지컬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가능한 나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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