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우리 재정건전성이 최고 수준이고,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확대재정을 권고했음을 내세운다. 내년 예산안은 걷힐 세금보다 더 많이 쓰는 적자 편성이다. 60조 원 이상 적자 국채가 발행되고, 국가채무는 올해 740조8000억 원에서 내년 805조5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7.1%에서 39.8%로 높아져, 건전재정의 마지노선인 40%를 위협한다. 국가채무는 2023년 1000조 원을 넘고, 2028년엔 15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채무비율도 2021년 42.1%, 2022년 44.2%, 2023년 46.4%로 급등한다.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성장이 후퇴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은 크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필요한 곳에 예산을 집중 투입해 경제활력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다. 단기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확대재정은 위기 때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그러나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균형재정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또한 재정운용의 기본이다.
지금 우리 국가채무비율이 허수(虛數)라는 지적도 많다. 한국은 정부가 직접 지급의무를 진 국채와 외평채, 국민주택채권 등만 국가채무로 잡는데, 선진국들은 공무원·군인연금 장기충당금, 국가보증채무, 공기업 부채 등을 포괄한다. 이를 모두 합치면 채무비율이 GDP의 130∼1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10%를 훨씬 웃돈다는 게 정설이다.
우려스러운 건 청와대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지각(知覺)이다. 문 대통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국가채무비율을 40%로 관리하는 근거가 뭐냐”고 따진 바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에 이어, 청와대가 또 상식을 무시한 이단(異端)의 경제이론에 경도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이 그것이다. 1990년대 초 나온 학설인데, 주류 경제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돼 오다 최근 미국에서 갑자기 관심을 모았다. 요약하면, 재정적자가 아무리 불어나도 정부가 무한정 돈을 찍어 갚을 수 있으니 국가부도 같은 파탄은 없다는 게 골자다. 정부가 인프라나 복지에 마냥 돈을 풀어야 소비와 투자, 고용도 늘어나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돈의 수요·공급이 통화량을 결정한다는 보편적 경제이론, 재정은 곧 세금이라는 상식의 부정이다. 주류 학계의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은 당연하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그냥 틀린 얘기”라고 일축했고, 미 재무장관 출신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초(超)인플레이션의 재앙으로 가자는 이론”이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아예 “쓰레기(garbage)”라고 했다.
요즘 국내에서도 MMT를 주장하는 이론가가 적지 않다. 그간 별로 명함도 못 내밀다가 경제를 살릴 새로운 진리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정부가 돈을 마구 풀면 물가·금리 급등, 신용등급 추락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제대로 논증하지 못한다. 그들은 국가채무가 GDP의 200%를 넘는 일본이 파탄나지 않고 있음을 근거로 내세운다. 일본은 기축통화 국가로, 국채 대부분을 자국민이 떠안고 있으니 망하지 않고 버틴다. 정작 일본 재무성과 중앙은행은 “MMT는 체계적 이론이 아니다”라며 논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다.
확대재정에 소득주도성장론이 오버랩된다. 근로자 임금부터 올려 소비와 생산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소주성’ 설계는 처음부터 모순이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했고, 실패한 결과가 넘치는데도 청와대는 옳은 길이라고 계속 고집한다. 오류를 덮기 위해 재정을 퍼붓는다. 배경이 MMT라면, 또 허튼 이론에 기대 나라 경제를 실험실의 모르모트로 내모는 꼴이다. 궤변임이 드러난 뒤, 잘못의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 심히 두렵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