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뒤늦게 영화로 대학원 진학을 할 즈음 들었던 의문이다. 이후 이른바 사회파 영화들을 밤새워 보기 시작했지만 그 답은 지금도 모호하다.
그래도 상업영화, 주류영화의 홍수 속에 꿋꿋이 현실의 아픔과 상처를 혹은 잊힌 역사의 한 장면을 당대에 끌어내어 당당히 스크린에 올려내는 정지영 감독을 보면서 ‘영화가 현실의 부조리를 조금은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정 감독은 아마도 한국영화판의 최고령 현역일 것이다(올해로 73세). ‘남영동1985’ ‘부러진 화살’ 등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일관된 작가주의 감독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 그가 이번에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금융범죄 실화를 소재로 하여 영화 ‘블랙머니’를 선보였다.
오직 직진만을 외치는 조진웅의 물오른 연기와 이제는 대세 배우가 되어 슈퍼 엘리트 변호사 역을 맡은 이하늬가 은근한 합을 이룬다.
실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주범인 론스타의 먹튀사건을 소재로 하여 만들었지만 복잡한 금융지식 따윈 필요 없다. 노련한 감독은 역시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 정도로 아직 젊다.
사건을 파면 팔수록 재미있었다는 감독의 열정이 잊힐 뻔한 황당무계한 금융사기극을 다시금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정당한 분노를 요구한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조진웅 검사 같은 사람이 열 명만 있었다면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한민국 검찰계가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게 한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