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인수·합병(M&A)시장은 100조 원대의 ‘큰 장’이 설 전망이다.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생존 경쟁에 밀려 구조조정 대상이 될 1조~5조 원대 기업들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삼성·현대기아차·SK 등 생존경쟁에 내몰린 국내 기업들은 사업 재편 차원에서 ‘빅딜’의 주인공으로 나설 전망이다. ‘이재용의 삼성호(號)’는 ‘도전’과 ‘상생’을 내세워 새로운 항해에 들어갔고, ‘카마겟돈(자동차와 ‘종말’을 의미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시대를 맞은 정의선 현대기아차 수석부회장은 ‘속도’에 더해 방향과 힘을 모두 갖춘 디테일을 더 단단히 할 M&A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사업 확장 고비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M&A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5일 유상수 삼일회계법인 거래자문(CF)리더(사진)는 “여전히 불투명한 거시경제 환경과 정부정책 이슈(지배구조 개편) 등은 내년 기업들을 사업 재편의 장으로 내몰 것”이라며 “적잖은 기업들이 현금 확보 차원과 ‘선택과 집중’을 위해 M&A를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그가 예상하는 시장 규모는 100조 원(사고 파는 기준)대에 달할 전망이다.
해외 ‘소·부·장’기업 사냥도 활발할 전망이다. 정부와 경제단체·기업들이 한마음 한뜻이다. 정부는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M&A하면 인수금액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대기업 5%, 중견기업 7%, 중소기업 10%) 혜택을 제공한다. 해외 전문인력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5년간 최대 70% 감면해준다.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섹터 내에 소재부품 기업 투자 부문을 신설, 별도 자금 출자를 추진 중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소·부·장 기업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한 1000억 원 규모의 펀드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경제단체·협회·은행 등은 소재·부품·장비의 과도한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외 인수합병(M&A)·시설투자 공동지원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그는 “대기업 그룹에서 이른바 ‘소·부·장’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정책을 배경 삼아 관련 해외 기업들을 대상으로 M&A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10년간(2008~2017년) 연평균 3건에 그쳤던 해외 소재부품 기업 M&A가 30건 이상으로 눈에 띄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대상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유럽의 소부장 업체들을 예상했다.
정부 정책 이슈도 기업들을 M&A시장으로 내 몰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국내 대기업들은 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에 한창이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현행법을 충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장에 내놔야 하는 매물들이 있다. 롯데그룹은 금산분리 조항에 따라 롯데카드·롯데손해보험의 매각을 끝냈고, LG그룹은 LG CNS 지분 처분에 나선 상황이다.
사모투자펀드(PEF)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굳이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인수·합병(M&A)에 손을 잡지 않겠냐는 기업들이 많다. 특히 자금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이라면 갑의 위치에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복수의 사모투자펀드(PEF) 관계자가 전하는 최근 M&A 시장의 진풍경이다. 올해 최대어로 불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애경그룹과스톤브릿지캐피탈이 손잡은 게 이를 방증한다.
유CF 리더는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PEF가 내년 M&A 시장에서 또 다른 주연이다”면서“특히 5000억 원 이하의 ‘미들마켓(Middle Marke)t 시장에서는 PEF가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 M&A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중견·중소기업은 가업승계 어려움, 경영환경 악화로 창업자들의 지분 매각이 활발할 전망이다. 유 CF리더는 중소기업 오너들의 말을 빌려 “더 버틸 체력이 없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보지만, 미래 성장을 위한 돌파구는 ‘그림에 떡’이나 다름없다”는 우울한 현실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