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아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은 교육과 기술’이라는 중국인들의 훈육 방식에 따라 두 딸에게 초스파르타식 영재 교육을 시켰다. TV 시청도 안 돼, 게임도 안 돼, 친구 집에 가는 것도 초대하는 것도 안 돼, A 이하 성적도 안 돼, 피아노와 바이올린 이외 악기 연주도 안 돼.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어찌 됐든, 두 딸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에서 ‘신동’ 소리를 듣게 됐고, 큰딸은 하버드대학, 작은딸은 예일대학에 각각 합격했다.
‘타이거 마더’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을 때 서구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흥미롭다”, “신선하다” 등의 평가도 있었지만, “아동 학대다”, “잔인하다” 등 서구와 전혀 다른 훈육 방식에 경악했다. 한 독자는 ‘타이거 마더’ 책을 발기발기 찢어서 추아에게 소포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호랑이 엄마’를 자처하며 육아와의 전쟁을 벌여온 그녀도 자녀의 출세를 위해선 불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유약한 엄마였던 것 같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큰딸이 10월부터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 대법관의 로 클러크(서기)로 일하게 됐는데, 그 채용 과정이 석연치 않다. 캐버노는 모두가 알다시피, 작년 10월 연방 대법관 취임 전까지 각종 성폭력 의혹으로 의회 인준이 불투명했었다. 그런데, 추아가 미국의 유명 일간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캐버노가 젊은 여성 법조인들의 멘토로서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내용의 평론을 실어주며, 캐버노가 인준을 통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추아는 예일대 로스쿨 클러크십위원회에서 캐버노와 일한 인연이 있다. 캐버노가 취임한 지 8개월 만인 지난 6월, 추아의 큰딸은 로 클러크로 채용됐다. 미국에서 신출내기 변호사가 연방 대법관 로 클러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변호사로서 그 미래를 보장받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 언론들은 “칼럼으로 얻은 클러크십”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추아 모녀를 둘러싼 의혹은 기회의 땅 미국에서 능력주의가 사라졌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이 됐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사리사욕과 딸의 출세를 위해 정권에 빌붙어 권력을 남용한 최순실,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시험 답안지를 빼돌린 숙명여고 교무주임.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를 양극으로 분열시키고 있는 조국 씨와 부인 정경심 씨. 이들의 공통점은 자녀의 출세를 위해 자신이 가진 재력과 권력, 인맥을 총동원하고, 더 나아가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진정 자녀를 위한 것일까. 추아의 사례로 보면 열등감과 부모로서의 자기 만족을 위해서다. 추아의 과거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계 필리핀 가정에서 태어나 이방인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서양 아이들과 다른 생김새와 억양 때문에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롤 모델은 아버지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중국인이었지만 교수라는 직업 덕분에 서구 문화권에서도 존경의 대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 이를 악물고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까지 졸업한 그녀는 월가의 로펌에 취직해 세간의 부러움을 샀지만,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자기의 일과 환경,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런 자신과 달리 남편은 탄탄대로였다. 남편은 다니던 로펌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추아가 그렇게 원하던 예일대 교수 자리도 쉽게 얻었다. 남편에 대한 자격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녀도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됐지만, 성인이 된 자녀의 진로까지 멋대로 하려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 ‘위선자’ 소리를 듣고 있다.
부모의 열등감과 욕심이 있는 한 ‘스카이 캐슬’은 어디든 존재한다. 얼마 전에도 미국의 잘나가는 사업가가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려고 입시 브로커에게 뇌물을 주고 스펙을 위조했다가 발각됐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그랬단다. “부모들의 이런 행동은 자녀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지위를 위해서인가.”
“가슴에 피눈물이 난다”, “덫에 걸린 쥐새끼 같다”던 분, 당신 자녀의 스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sue6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