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는 국회의 올해 국정감사에 또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불려나가는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감 증인 및 참고인 채택 작업을 진행 중인 상임위원회들이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들을 대거 포함시키고 있다. 이미 환경노동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등 일부에서 여야가 소환에 합의한 숫자만 100명이 넘고, 다른 상임위도 경쟁하듯이 기업인들을 출석시킬 태세다. 예년보다도 훨씬 많은 기업인들이 국감장에 설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한숨 또한 깊어지고 있다.
증인 신청 명단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김승연 한화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총수와 주요 대기업 CEO들이 망라됐다. 정말 잘못된 구태(舊態)이자 국회의 적폐다. 국감은 국회가 정부의 국정운영과 예산에 근거한 나라 살림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감독하고 심사하는 절차다. 여기에 민간의 기업인들을 불러내는 것부터 국감 본연의 취지에 어긋난다. 기업에 문제가 있다 해도, 관리 감독의 책임을 갖고 있는 행정기관을 추궁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매년 국감 때마다 무분별한 기업인 출석 요구가 남발되고,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지난 18대 국회는 연평균 76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19대에 120명으로, 이번 20대에는 126명으로 증가했다. 마구잡이로 기업인들을 소환하고 있지만, 그 사유가 합당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세워 제대로 현안을 묻고 설명을 듣는 자리가 된다면 그래도 낫다. 국회는 기업인들을 출석시켜 죄인 취급하면서 호통과 망신주기 등의 ‘갑질’만 일삼아 온 것이 그동안 의원들의 행태였다. 글로벌 경영에 한시가 바쁜 총수와 CEO들을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한 뒤 겨우 몇 마디 묻고 답변조차 듣고 돌아가게 하거나, 아예 질의도 하지 않은 채 윽박지르기로 일관해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원들이 증인 채택을 흥정의 도구로 삼아 기업과 뒷거래를 시도해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는 등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업들은 경영공백과 함께 대외신인도에도 이만저만한 피해를 입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최악의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고,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경제전쟁, 글로벌 경기 후퇴와 환율·유가 불안 등 중첩된 대외 악재,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이겨내기 위한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반(反)기업·반시장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정부 경제정책마저 기업의욕을 꺾고 투자를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특히 올해 국감에서 기업인들에 대한 출석 요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보여주기식이 많다. 기업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만 놓는 이런 적폐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