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이트리스트(전략 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배제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일본발 쓰나미가 반도체 업계를 덮쳤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D램의 경우 73%, 낸드플래시는 46%를 차지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국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면, 글로벌 반도체 업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를 제외하면서 우리나라는 857개 품목에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수입 규모가 크고 의존도가 높은 고위험 품목은 83개로,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소재·부품·장비 37개 품목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미 수출규제에 들어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PR),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 소재를 포함해 실리콘웨이퍼, 반도체 제조용 에폭시 수지와 액체 여과기,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레이저 작동식 기기, 반도체 웨이퍼 시각·세척 기기, 반도체 다이오드 등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반도체는 우리가 일본에 앞서 있지만, 다이오드 등을 포함한 반도체 소자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자 생산은 우리나라의 3배 규모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소자 생산은 8000억 엔(약 8조9000억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소자 생산은 약 2조8000억 원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자 생산은 우리나라의 3배 규모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블랭크마스크, LCD 제조용 사진플레이트와 필름 등 10여 개 품목에 차질이 예상된다. 그러나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력인 OLED 산업은 LCD 산업과 달리 초기 생태계가 국내에서 조성되어 핵심 장비·소재 국산화 비중이 높아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자업계는 3분기에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일본의 수출 규제 파급력이 3분기에 명확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반도체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5개월 정도의 불화수소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회사들이 수출 규제 발표 직후 일본 업체에 서류를 전달, 일본 정부가 검토할 수 있도록 했으나 대부분이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소재 품목을 수입하려면 계약 건별로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고, 심사까지는 약 90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재고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3분기가 일본의 이번 조치에 따른 영향이 나타나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강행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도 높아졌다. D램 현물가격은 이달 들어 평균 24% 급등했으나 재고 압박과 수요 부진이 여전해 대형 고객사에 대한 계약가는 급락세를 이어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장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생산과 투자를 조정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생산라인 최적화·효율화 전략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사업부의 전세원 부사장은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반도체 감산 여부에 대한 질문에 “반도체 수요 변동에 따라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D램은 생산 캐파(CAPA)를 4분기부터 줄이기로 했다.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이겠다고 밝힌 낸드플래시 웨이퍼 투입량도 15% 이상으로 줄일 것이라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나라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강행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며 “반도체 가격이 급등락하면서 정확한 수요와 생산 예측도 어려워지고,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하반기 반도체 업황을 예의주시해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