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WTO(세계무역기구)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이런 주장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우리가 해당돼 이제는 우리의 농업 분야도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는 데 있다.
북한이라도 가만히 있어주면 좋을 텐데 북한마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쏴 대고 있다. 미사일을 쏘고 나서 이제는 ‘친절하게도’ 자신들의 미사일은 대한민국에 대한 경고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쯤 되면 외교와 경제 분야의 총체적 위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잘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당면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하는데 싸움만 하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지금은 “당신네 당의 친일파 후손은 몇 명이지 않느냐”라는 식의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연좌제적 비난이나 친일 여부를 감별하는 ‘내부 진실게임’을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정싸움이 돼서 초당적 협력은 고사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야 간의 친일파 논쟁은 현 상황 타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 정치판이 친일 논쟁에 휩싸일수록 좋아하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번 WTO 이사회에서 자신들의 조치는 ‘안보 차원에서 이뤄진 수출관리’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금의 한일 갈등이 경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일본 전략의 표현이다. 결국 일본은 지금의 갈등이 경제 문제로 비쳐지는 것을 꺼려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지금의 갈등을 경제 문제로 몰고 나가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지금처럼 국내에서 친일파 논쟁을 하게 되면, 국제사회는 지금의 한일 갈등을 경제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결론적으로 친일 논쟁은 초당적 협력을 통한 외교적 대응을 방해하고, 국제 사회의 여론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드는데도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젠 친일 논쟁뿐만 아니라, 호전 세력 논쟁도 불거지고 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에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 등을 주장하자, 민주당은 “황 대표와 한국당이 원하는 것은 전쟁인가”로 맞받아친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진짜 위기 극복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외교를 비판하면 친일파가 되고,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 호전 세력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판은 왜 극단만이 존재하고 중간지대가 없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남북군사 합의 폐기를 주장했다고 곧바로 “전쟁을 원하는가”로 맞받아치지 말고, 다른 표현을 통해 상대를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줄 수 없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야당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그걸 극단적인 논리로 받아치는 것은 결코 여당다운 모습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여권은 국정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다. 국정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여당이 지금의 위기 극복을 위한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함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워 야당을 몰아붙이는 것을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이라고 보기 힘들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단합해서 지금과 같은 초유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당은 여당으로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존재감을 회복해야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발목 잡는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외교적 사안에 대한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여권이 국민적 단결을 원한다면, 포용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단결은 포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상대를 굴복시켜 다른 소리를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