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 교수가 의문을 제기한 대목은, 이처럼 미국민 대다수가 비판하는 정책들을 밀어붙이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횡포를 부리도록 허용하는 미국 정치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그 원인을, 모든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한 단 한 명의 후보자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고 이후 유권자의 의견은 무시되는 승자 독식의 미국식 선거제도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선거제도가 매우 비효율적인 양당제를 고착화시켰으며, 그 결과 아무런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으른 민주당의 존속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고장난 미국 정치제도의 결과로 탄생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지탱해왔던 근간인 브레턴우즈체제를 완벽히 뒤흔들어 놓았다. 즉 1·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던 무차별적 보호무역주의를 방지하기 위하여 구축된 자유무역체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무역체제와 그에 따른 세계화의 결과 줄어든 미국 내 블루칼라 일자리를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으로 당선된 트럼프이기에,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하여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단순조립업까지 포함한 모든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 영토 내에서 다시 만들도록 미국 기업 및 외국 기업들에 대한 팔 비틀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무리수 덕분에 모든 국제경제학 교과서가 개정되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즉 경제적 효율성를 위한 세계화와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확산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 지구적 혼란을 틈타 일본 아베 행정부는, 자신의 개인적·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무역정책을 활용하는 트럼프의 정책을 그대로 복사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놀라운 점은 일본 내에 만연하고 있는 극우세력의 결집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이번 조치를 일본 유권자 대다수가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메이지유신 이래 최근까지 일본의 여론이라는 것은, 일본 사회 특유의 집단주의적 특성을 활용한 집권층의 의도대로 너무나 쉽게 조작되었다는 과거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
이번 수출규제는 일본의 핵심 소재 및 부품에 대해 기형적 의존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 주력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노린 것이다. 이 같은 한국 때리기가 가장 ‘값싸고 효과 빠른’ 정치적 지지도 회복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베 행정부에, 최근 한국 정부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중재를 부탁하는 구애의 모습은 가소롭게 보이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트럼프에게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정치적 논리나 정당성은 휴지조각과 같다는 것을, 아베 스스로가 최근 실패한 구애 경험을 통하여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이어진 미·일 신밀월관계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배후에 워싱턴의 압박이 있었음을 고려할 때 미국의 중재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트럼프의 중재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국이 핵심소재 및 부품 국산화 전략을 얼마나 조속히 구체적으로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국산화 전략이 실행 가능성이 높아 보일 때에야 트럼프는 중재 시늉을, 또 아베는 보복 정책 재고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