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의 분계선을 넘을 때도 문 대통령은 멀찌감치 지켜보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북 정상이 장시간 회담을 가졌을 때도 만남의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분단의 선(線)을 넘을 때,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런 획기적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이용할 생각도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오로지 한반도 평화만을 생각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줬다. 한마디로 이런 세기적 이벤트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본인의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3자회동은, 우리와 미국 그리고 북한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좋았을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자신의 진정성을 확실하게 보임으로써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김정은 또한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과 대화에 나설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미북 정상 간의 만남은, 세계의 주목도만큼의 실질적 성과는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를 주장했던 미국과 영변 핵 시설 폐기만으로 제재를 풀려했던 북한의 입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미국과 북한 간의 만남에서 이런 입장의 차이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정은과의 만남 직후 가진 기자회견 형식의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서두르면 항상 실패를 하게 된다”며 “속도보다 올바른 협상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언젠가는 (제재의)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해제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김정은과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입장은 변한 것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한미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도 아직은 해제되지 않았지만 저는 이 부분을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이란에 대해서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저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회동한 직후 밝힌 입장과 똑같다. 결국 이번 트럼프-김정은 회동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주도로 2∼3주 내 실무팀을 구성해 실무 협상을 하겠다”와 “우리는 각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인 협상과 합의를 하겠다는 점에 대해 합의했다”고 한 정도의 성과만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북 간 대화의 모멘텀을 살렸다는 측면에서 이번 미북 회동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회동을 통해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톱 다운’ 방식의 협상 전략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의미도 있다.
대화는 분명히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이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여정은 다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