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여 년이 흐른 뒤, 선조들의 예감은 끝내 현실이 됐다. 칠왕국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지만 어쩐 일인지 안으로 힘을 기를 뿐 한껏 웅크렸던 동방의 거대한 나라, 지나국이 왕좌를 내놓으라며 천조국에 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칠왕국의 후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나국은 용을 숭상하는 나라였으며, 그들을 이끄는 시집삥이 드라카리스를 타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조국의 왕 도라뿌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죽은 자들의 왕 나이크킹을 암살한 아리아 스타크의 후손이며, 한편으론 용녀 대너리스를 제거한 존 스노우의 후계자이기도 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더구나 도라뿌는 천조국이 썬본을 무릎 꿇린 역사의 현장, 플라스 호텔의 주인이었다.
천조국은 이미 썬본의 어설픈 도발을 겪으면서 도전자를 사냥하는 방법을 확실히 배워뒀다. 썬본과 3년간 무역전쟁을 벌이며 혼을 빼놓은 뒤, 10년 동안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판을 엎기를 반복해 진이 빠져버린 썬본에 백기투항을 받아낸 그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자던 용이 머잖아 몸을 일으킬 것을 예상하고 오랫동안 주시하던 천조국은 지나국이 ‘지나제조 2025’를 공표하자 30년에 걸쳐 진행할 전쟁 시나리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2018년, 천조국은 “지나제조 2025는 기술도둑질”이라며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이 계획은 이미 2010년에 발표된 옛 일이었다. 8년 동안 추가된 내용이라고는 7대 전략 신흥산업육성 대상에 전력장비와 농기계, 그리고 국가전략성신흥산업에 디지털 창의산업이 들어간 정도였다. 천조국에게 지나국의 ‘지나제조 2025’는 썬본의 ‘엔의 국제화에 관해’처럼 때마침 등장해준 좋은 명분일 뿐이었던 것이다.
시집삥은 관세폭탄을 쏘고 트위터 심리전을 걸어오는 도라뿌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무언가 불안했다. 눈에 다 보이는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은 설계와 큰 그림으로 승부하는 천조국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히 손자병법의 나라인 우리에게 성동격서를…. 제조업과 기술전쟁 쪽으로 시선을 돌려놓은 뒤 결국 썬본처럼 금융으로 승부를 보시겠다?”
◆Ep2. 서쪽이 소란하니 동쪽이 비다 = 동방의 끝자락에는 함성소리 요란한 천조국과 지나국의 무역전쟁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부칸의 왕 으니는 베트녀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간 천조국 도라뿌가 일주일 만에 뭐씹던 DC 연방지방법원에 지나국 은행 세 곳을 제소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은행들은 핵무기 개발 자금 조달을 위해 설립된 부칸 유령회사와 불법 금융거래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이 은행들의 거래액은 2012년 10월부터 2015년 1월 동안에만 무려 1억6500만 달러에 달한다.
비밀금고가 들통난 으니는 도라뿌가 거래정지 조치를 내릴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금고가 잠기면 그 돈으로 호화사치 생활을 누려왔던 군 고위 간부들의 불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지나국은 부칸 군부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으니 정권을 버릴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안보경제관계 검토보고서’까지 등장했다.
진짜 문제는 천조국이 부칸의 핵무기 개발에 연루된 이 은행들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할 경우 본의 아니게 으니가 지나국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 은행들은 세계 최대 규모인 지나공상과학은행을 포함해 하나같이 지나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초대형 금융회사들이다.
만약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이들을 달러결제시스템에서 배제시키면 다음 차례는 헬게이트다. 으니는 달러가 사라진 나라의 금융과 무역시스템이 어떻게 변하는지 친구들인 걔네수엘라와 쿠팡 등을 통해 이미 지겹도록 봐왔다. 으니의 머릿속에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베트녀에서 도라뿌가 내민 손을 꼬옥 붙잡았어야 했어. 내가 지나국을 잡는 데 쓰일 숙주가 될 줄이야….”
시즌 11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