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지금도 100년의 역사를 지닌 작은 기업들이 많다. 오랜 세월 지속적인 위기에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저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본업사수경영’에서 찾는다. “일본의 많은 중소기업의 장수는 본업을 사수하겠다는 결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가업이 가업이 되고, 위기를 맞더라도 유행에 휩쓸린 사업다각화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양적으로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통념이 그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일본에서는 기업을 영속시켜 나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노렌(상점 입구의 처마 끝이나 점포 입구에 치는 무명천으로 만든 가림막)을 지킨다”라고 말한다. 노렌을 지키는 기업들은 초밥가게, 우동가게, 주물공장, 금형공장 등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하다.
노렌을 지키는 기업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노렌을 지키는 것에 근간을 두고 본업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생각하면 기업은 숱한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어떤 방향으로든 진화한다. 이들에게는 장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본업을 지키는 것이 우선시된다. 장수는 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생존을 넘어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전진해 온 일본의 중소기업들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자사만의 철학이 있다. 이를 ‘고다와리 경영’이라 부른다. 여기서 고다와리는 ‘~에 얽매이다’, ‘~에 집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다와리 경영은 역사적으로 배양된 노렌을 지키겠다는 일본 고유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자기 분야를 깊이 파고들면서 최고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경영을 뜻한다.
고다와리 경영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우직하리만큼 본업을 고수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대한 변신 능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업 고유의 본질을 바꾸는 일은 용납하지 않지만 성역 없는 변신을 꾀하는 것은 받아들인다.
이 책은 모두 5개 장으로 구성되며 각각의 장은 고다와리 경영을 채택한 일본 기업들의 변신을 분류한 것이다. 변신의 성격과 방향에 따라 ‘매력적인 경영자’, ‘명확한 지향점’, ‘글로벌 마인드’, ‘개선 능력’, ‘변화 적응능력’으로 구성된다. 외형상 한국이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고들 말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일 간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몇 해 전 오사카의 성형 공장을 방문하였을 때 그곳 경영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저자는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공장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합니다. 내게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들리거든요. 앉아 있으면 상태가 좋지 않은 기계를 단번에 알 수 있어요.” 이 책에 소개된 30개 기업들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비장의 무기가 있다.
저자는 또 이런 문장도 썼다. “일본 기업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글이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일본을 추격하면서 수십 년을 지내왔지만 이 땅에서 이 세상에서 최고의 것을 만드는 사명으로 대를 이어가는 기업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황을 헤쳐나가는 기업들에 교훈과 분발 그리고 성찰을 요구하는 책이다. 발로 뛰는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낸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